백발은 아름다워
백발은 아름다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11.1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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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모든 생명들은 나이가 들수록 생기를 차츰 잃어가는데,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겉모습에도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주름이 늘어가고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고 하는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외형적 노화에 대해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화장이나 성형 등으로 그것을 가려보려 안달이지만, 결국 이런 노력들은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는 말이 이 경우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나이 들며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늙는 모습을 미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자신의 늙은 모습을 특유의 호방한 어투로 결코 침울하지 않게 그려낸다.

◈ 추포의 노래(秋浦歌)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 백발이 삼천 길이나 자랐으니

緣 愁 似 個 長(연수사개장) : 근심으로 그렇게 길어졌나

不知明鏡裏(부지명경이) : 맑은 거울 속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지 모르네

 

※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흰 머리를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흰머리가 길면 길수록 더 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흰 머리가 길게 자란 자신의 모습을 싫어한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모습에서 더부룩하게 자란 흰 머리를 보게 되었을 때, 시인도 물론 그 모습이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싫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대신, 그것을 활용해서 호쾌한 장관을 연출해낸다.

시인이 흰 머리가 삼천 길이나 된다고 했을 때, 흰 머리카락은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니고 하나의 폭포로 변신한 것이다. 시인은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라는 시에서 폭포의 모습을‘삼천 척이나 하늘을 날아 떨어진다(飛流直下三千尺)’라고 표현한 바가 있는데, 여기서는 흰 머리가 삼천 길로 자랐다고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흰 머리를 폭포와 연계시킨 것이다. 폭포처럼 내려뜨려진 흰 머리에서는 노쇠한 느낌 대신 도리어 힘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 왜 흰 머리가 이렇게 길게 자란 것일까? 시인은 그 이유를 근심이라고 설파한다. 근심이 얼마나 많고 컸으면 흰 머리가 폭포처럼 삼천 길이나 자라 늘어뜨려질 수 있단 말인가? 시인 특유의 유쾌한 허풍이 아닐 수 없다. 근심 때문에 길게 자란 흰 머리는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니지만, 시인은 이를 어둡거나 쓸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호쾌하고 재치 있는 비유가 쓸쓸함이나 비탄을 느끼게 하는 대신 절묘한 멋을 느끼게 한다. 시인의 백발에 대한 재치 있는 묘사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밝은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가을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아 있는데, 그 서리를 도대체 어디서 얻어 온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늦가을이면 지천에 깔려있는 서리이니만큼,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얻어다가 머리에 두르고 있는 것이니, 대수로울 게 없다고 능청을 떠는 시인의 모습에서 늙음에 대한 비탄이나 쓸쓸함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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