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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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 울음소리
여름이 채 꼬리를 감추기도 전에 찾아온 가을바람이 꽤 차다. 오늘 아침엔 산에 갈 때 소매가 긴 옷을 걸치고 나갔는데도 몸이 선득 거렸다. 매미가 하루 종일 울어대던 산 속에도 어느덧 스멀스멀 가을이 찾아들고 있었다. 아카시아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고, 청설모가 떨어뜨린 참나무 가지의 도토리는 색은 퍼래도 열매는 실했다. 혼자 걷는 산길에 자꾸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아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만이 선들선들 불고 있을 뿐이었다. 바람소리도 얼마 전이랑 사뭇 달랐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산을 찾도록 내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꾀꼬리이다. 꾀꼬리는 해마다 봄이면 동네 뒷산의 같은 장소로 찾아온다. 야트막한 산의 가장자리에 있는 참나무가 바로 그 곳이다. 해마다 찾아와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꾀꼬리가 얼마나 어여쁜지 모른다.

꾀꼬리는 울음소리는 듣기 쉬워도 그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울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고 목이 뻣뻣해지도록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노라면 꾀꼬리는 후드득 날아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 그 때나 잠깐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친정어머니는 햇 된장을 떠줄 때마다 된장 빛이 꼭 꾀꼬리 빛깔 같단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한다. 꾀꼬리는 정말 친정어머니가 퍼주시는 그 햇 된장처럼 샛노랬다. 고운 빛깔에 그 아름다운 노래 소리란! 그런데 꾀꼬리가 늘 고운 목소리로 우는 것만은 아니다. 꾀꼬리가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심증으로는 그랬다.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무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한동안 들리지 않던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호 호이호, 호 호이호, 마치 깊은 산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골짜기의 물과 파란 하늘, 푸른 숲을 한 바퀴 휘돌아 온 듯 청아한 울음소리, 분명히 꾀꼬리 울음 소리였다. 늘 들리던 참나무 위가 아니라 이번엔 아카시아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를 좇아 두리번거리는데 예서 제서 노란 꾀꼬리가 날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바람에 날리는, 노랗게 물든 아카시아 잎이었다. 아둔한 나를 혼란시키려 작정을 한 듯이 무수한 아카시아 잎들은 노란 나비 떼들처럼 나부꼈다. 그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청아한 소리가 들리던 곳에서 '꽤액' 비명처럼 내지르는 괴상한 소리가 났다. 꽤액, 꽤액, 그 듣기 거북한 소리는 거푸 들렸다. 그러더니 다시 같은 자리에서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숲이랑 바람이랑 꾀꼬리가 모두 작당을 하고 날 놀리는 것만 같았다. 얼마 뒤 울음소리는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엄마가 동구마당에 놀러나간 아이를 부르듯이 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소리다. 저렇게 다른 소리들을 정말 꾀꼬리 혼자서 내는 것이 맞나 싶었다. 어쩌면 아주 가까이에 다른 종류의 새가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반짝하며 내 머리 위를 지나 쏜살같이 하늘을 비껴 날았다. 꾀꼬리였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나던 자리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심봤다!'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꾀꼬리가 괴상한 소리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는데 그 것이 증명이 된 셈이었으니.

내가 들은 꾀꼬리 울음소리는 네댓 가지 정도 된다.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호 호이호 우는 소리, 성질 고약한 사람이 강짜를 부리듯이 꽤액 하고 내지르는 소리, 길게 빼며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소리, 봄에 소녀의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소리.

흔히 예쁜 소리를 꾀꼬리 소리d 비유한, 그러나 꾀꼬리가 꽥꽥거리며 우는 것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섣불리 그런 비유를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빛깔의 꾀꼬리 울음소리, 사람도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고운 목소리, 북북 퉁명스럽게 내뱉는 소리,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목소리.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내 목소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또 나는 상대에게서 어떤 목소리를 끌어내고 있을까 올 여름 끝 무렵, 꾀꼬리가 내게 준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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