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이 된 잘못
버릇이 된 잘못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11.1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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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늘 잘못하면서도 익숙해져서 그것이 잘못인지 모른다. 요즘 내가 그렇다.

오늘 아침에는 컴퓨터를 켜면서 한글과 영문의 차이 때문에 생긴 오타-그러니까 영자 자판으로 한글을 치거나, 한글 자판으로 영어를 치는 것을 나는 어느덧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인다. 분명히 그것을 불편해했고 따라서 개선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십수 년이건만,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한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20대 때 일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이라서 신촌에서 당산을 가려면 서쪽방향으로 가야 할 텐데도 동쪽방향으로 타는 할머니를 만난 적 있다. 2호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지하철에 익숙하지 않은 그 할머니는 당신의 방향을 고집하고 있었다. 한 시간의 차이가 벌어지는 데도 그랬다.

나는 그때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나는 나이 들어서 그러지 말자. 아무리 익숙해지더라도 다시 묻고 또 묻자. 젊은이의 창조성을 유지하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 찾고 또 찾자,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보자!

젊은이와 늙은이의 차이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은 집까지 오는 길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본다. 그러면서 가장 알맞은 길을 모색한다. 길 마다도 자신의 놀이가 있다. 이리로 가면 뭐가 좋고, 저리고 가면 뭐가 좋다. 보통 때는 이리고 가지만, 비 오는 날이면 저리로 간다. 눈이라도 오면 어느 길로 가야 한다. 온갖 것을 다 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다니던 길이 편해진다. 이 길로 갔으니 이 길로 간다. 저 길로 다녔으니 저 길로 다닌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난 이게 좋다.

거기에는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하나의 조건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돌더라도 편한 길을 찾는다. 기력도 없을뿐더러 무릎도 아프다. 돌더라도 안정된 길이 좋다. 노인이 아이들처럼 험한 지름길을 다닐 수는 없다. 그러나 몸이 재빠른 아이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닌다. 가끔 다치기도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길을 가는데도 이렇게 두 방향이 있다. 요즘 식의 용어로 말하면 보수와 진보일지도 모른다. 늦더라도 넓은 길이 있고, 빠르지만 좁은 길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친숙하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영어표현에는 ‘가족 같다’(familiar)거나 ‘면식 있다’(acquaintant)와 같은 말도 있고, 심지어는 ‘순화(馴化)된다’(domesticated)는 말도 있다. 동(식)물에게는 특별하게 ‘길들이다’(tame)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는 ‘버릇’이 가장 가까운 말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버릇없다’는 뜻은 본데가 없어 무람없이 구는 것을 말하니 함부로 쓸 수도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버릇’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버릇은 있어도 나쁘고 없어도 나쁘니, 버릇은 참 어려운 말이다.

부처님은 직업으로서의 잘못은 업이 쌓이지 않는다고 했다. 백정이 소를 죽여도 그것은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는 숙련(skill)이라고 번역한다. 우리말과는 너무 다른데, 왜냐면 ‘버릇이 된 잘못은 괜찮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불교는 익숙해진 습(習)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사는데 더 주안점을 둔다.

나의 버릇은 과연 옳은가?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나의 버릇으로 남의 버릇을 탓하는 버릇이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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