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을래?
같이 밥 먹을래?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3.11.0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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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문뜩 따뜻한 밥 한 끼가 휘몰아치듯 그리울 때가 있다.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찰진 밥 한 그릇과 하얀 두부, 빨간 고춧가루, 초록 청양고추 어우러져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가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는 된장찌개만 있으면 보는 사람 배부르도록 맛있게 먹어 줄 수 있는 아쉬운 때가 있다.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결국에는 우유 한 컵에 입맛 다셔보지만 차가운 우유가 목을 넘어갈 때쯤 알면서도 몰랐던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밥이 아니라 같이 먹어 줄 사람이 그립다는 것을. 그리움이 허기로 찾아들 때 꼭 듣고 싶은 말, “같이 밥 먹을래?”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건네야겠다.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올래?”

도서 ‘같이 밥 먹을래?’(여하연 지음·이봄·2013) 의 저자 여하연 작가는 30대 중후반이 되어 나만의 집, 나만의 부엌을 갖게 됐다. 그녀는 이름 모를 우리를 불러 뜨거웠던 20대 청춘을 지나 30대가 되어 말할 수 있는 여자의 삶, 여자의 인생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진솔하게 한 그릇 요리와 함께 차려주었다.

사랑하고, 웃고, 아파하고, 친구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살아가면서 너와 내가 느끼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내 마음에 와 닿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러고 보면 기쁜 순간에도 슬픈 순간에도 모든 순간엔 항상 음식이 있었다. 탐욕적이며 단순하고 간사한 인간은 인생의 절정과 절체절명의 순간뿐만 아니라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계속 먹는다. 정말 그렇다. 친구가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슬퍼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밥을 먹고 있었고, 일이 힘들고 월급이 적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손에는 맥주잔이 들려 있었다. 그러니 ‘이야기’를 재료로 만든 인생이라는 하나의 ‘요리’를 담았다는 작가의 말이 정확한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일까? 배가 고파 허겁지겁 집에 왔는데 집에 남아 있는 건 가공된 햄 한 통. 따끈한 쌀밥과 그 위에 얹은 잘 구운 햄, 거기에 달걀부침 한 개면 그날은 운 대박이라고 한다. 운이 좋은 사람보다 자신이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이 좋아 보인다. 한평생 좋은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결핍’이나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보다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보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단점도 많지만, 자신의 유일한 장점을 키워 모두가 환영하는 재능으로 만든 사람, 그래서 자신은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래도 하나는 건졌잖아”하며 여유 부리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친구와 다툰 날은 잼을 준비해야겠다. 잼은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불 앞에 서서 타지 않게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불 위에서 과일이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참 이상했다. 오랜 시간 졸여서 응축된 달콤함은 누군가를 향한 내 마음을 닮는다.

요리는 취미, 수다가 전공인 여하연 작가의 식사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나니 내 삶을 더 예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직 보지 못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과 휴 그랜트 주연의 ‘노팅힐’도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끓여주셨던 ‘갱죽’이 먹고 싶어졌다. 쌀, 콩나물, 수제비, 김치, 냉장고에 남은 야채 등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이것저것 참 많은 것이 들어가지만, 들어가는 가지 수와는 달리 따끈한 맛뿐이었던 갱죽. 추운 겨울 뜨끈한 아랫목에 큰 상을 펴고 갱죽 한 솥으로 온 가족이 푸짐하게 먹었던 기억. 어린 나는 참 맛없다 생각 했었는데 이제야 왜 가끔 그 맛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오늘 엄마에게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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