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제7일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3.10.2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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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코끝이 싸해지는 바람이 분다.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워지고 햇볕 맞이를 하면서 잠깐 졸고 싶은 그런 계절이다. 이런 가을날을 나는 어릴 적부터 독서의 달이며,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당연한 사실처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을 알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바쁘게 책을 사서 곳간에 양식을 재어 놓듯 쌓아 놓는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가을이 찾아온 날 내가 선택한 책은 ‘제7일’(위화 저·문현선 옮김·푸른숲 출판)이다. ‘제7일’은 ‘허삼관 매혈기’로 국내에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위화의 신작이다. ‘허삼관 매혈기’가 근대의 중국인의 삶을 위트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소설이라면, 이 책은 현재 중국인 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의 현실이 그러하듯 마냥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슬프지도 않은 그런 시민의 삶을 조용히 들려준다. 그 가운데 나는 헛헛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혀끝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주인공 양페이가 죽고 난 후 사후 세계로 가기 전 경계에서 7일간의 기록이다.

그 7일 동안 양페이는 가족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태어난 양페이는 태어나자마자 기차선로에 떨어지고, 그런 양페이를 처음 발견한 역무원에 의해 자랐다. 평범한 삶의 시작은 아니지만, 특이한 삶의 모습 또한 아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자란 양페이에게 사랑도 조용히 찾아오고 이별도 담담히 찾아온다. 그의 죽음도 그러했다.

“감정에 관한 한 나는 문과 창문이 꼭 닫힌 집처럼 답답하고 둔했다. 사랑이 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를 분명히 들으면서도 그게 지나가는 행인의 발걸음, 다른 사람을 향한 발걸음이라고만 생각했다.”

저 문장을 통해서 양페이를 모습을 그릴 수 있다. 그는 수줍고 순응하는 그런 사람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뜻하는 완장을 차고 옷을 차려입는 동안에도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에 소극적인 사람들에 관한 표현이 마음에 들어 저 문장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고 다시 읽고, 또다시 읽는다. 또한 낯선 감정 앞에 발걸음을 주저하고, 애써 눈치 채지 않은 척하는 내가 저 문밖에 있는 듯해 다시 또 읽는다.

“본받을 만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데도. 소설을 왜 읽을까요?”라고 묻던 한 작가의 질문이 생각난다.

왜 나는 위화의 소설을 읽고 생각하고 곱씹을까? 그의 소설 속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끼고 동질감을 느끼고 또한 위안을 받는다. 특히 이 책을 읽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욱 애틋해졌으며, 아버지의 흰머리와 얇은 다리가 눈에 밟혔다. 위화의 책은 늘 그렇다. 내 감정을 확인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닐까? 점점 깊어지는 가을, 또 다른 책을 시작하기 전에 애써 감정을 추스른다. 양페이를 다시 가슴 속 깊이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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