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김예식의 '이야기 天國'
향토사학자 김예식의 '이야기 天國'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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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세영언(家世零言)
(1) 5대손(五代孫)을 살린 적덕(積德)

가세영언(家世零言)이란 책은 전주 유씨 安東무실(水谷) 종가댁에 보존되어 있는 책인데 영언(永言)은 시와 노래를 뜻하고 영언(零言)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길 뜻한다. 때문에 이 책은 전주 유씨에 세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언제 누가 쓴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한 편만 옮겨 본다.

전주 유도현 공은 덕(德)이 심후하고 행실이 지극한데 하루는 공이 집 서쪽 숲속에 불빛이 있어서 기이하게 여겨 가보니 걸인 내외가 해산을 하는지라.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리고와 순산을 시키고 남자를 불러 어렵게 된 사유를 물으니 "서울 살다가 병자호란을 만나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고 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라고 해서 여러달 조리시켜 주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 가면서 불망서(不忘書)를 써주고 갔다.

그후 5대손(五代孫) 한 분이 살인혐의를 받고 안동부사(安東府使)에게 잡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불망서(不忘書)를 써준 이의 현손이 청풍 김씨 김종수(金鐘秀) 정승이었다. 워낙 다급한지라 서울 김종수 대감댁에 찾아가 불망서(不忘書)를 보였지만 그런 내용을 모르는 김정승은 묵묵부답이였다. 그리하여 하인방으로 나와 한숨을 쉬며 묘안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김 정승은 그때 90조모가 살아 계신지라 조모의 방에 들어가서 하루 일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安東에 사는 柳서방이 살인죄를 지었는데 살려달라면서 우리집안과 무슨 세의(世誼)가 있다면서 불망서(不忘書)를 내어놓으나 우리집이 어째서 안동 그 사람 집에 가서 태어날 까닭이 없을 듯하여 맹랑(孟浪)하게 생각했습니다"고 하자 그 늙은 조모가 듣고는 벌떡 일어나면서 "대감, 그래 그 사람 어찌 되었나" "예 하인방으로 보냈습니다" 하자 노마님이 크게 꾸짖어 가로되 "자손이 되어 조상의 은덕을 모르면 天下에 不孝니라." 하고는 손부 정경부인(貞敬夫人)을 불러 "얼른 가서 대감의 새옷 일습(한벌)을 가져 오너라." 이르고는 손자대감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 옷을 가지고가 그 사람을 목욕시키고 이 의관을 입힌 뒤에 네 방으로 불러들이고, 너도 의관을 갖추고 같이 큰 사랑에 가서 괴짝을 열어보아라. 그러면 깨닫는 것이 있을찌니…"

과연 열고보니 그 안에 불망서(不忘書) 한 벌과 일기와 누더기가 있는데 모두 불망(不忘)이라는 수가 있는지라. 일기와 수를 보고 김 정승은 이러한 크나큰 은인(恩人)을 모르고 냉대하였으니 세상에 용납지 못할 것이라면서 노조모에게 죄를 청하니 "알았으면 어떻게 하든 유씨댁의 사람을 살리도록 하라"고 엄명을 하신다.

살인누명을 쓴 사람을 그냥 살려주라고 명을 내릴 수도 없고 밤새도록 고민한 김종수 정승은 입궐하여 안동부사와 경상감사를 교체해서 새로 부임한 부사와 감사로 하여금 살인의 누명을 벗게 했단다.

청풍 김씨 김종수 정승은 '忠碑三月碑'를 쓴 유복자 윤(潤)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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