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3.10.1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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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친구가 없는 것만큼 적막한 것은 없다. 우정은 기쁨을 더해주고 슬픔을 감해주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고등학생 딸내미가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힘도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영화를 함께 보거나 차 한 잔 나누는 친구의 소중함이 새록새록 든다.

‘상실의 시대’, ‘1Q 84’로 우리에게 익숙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선 인세가 16억이라는 소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쓰쿠루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넷에게 이유도 모른 채 절교를 당하고, 어른이 되어 여자 친구의 조언으로 친구들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이며 이름에 색채가 들어간 친구 ‘아카(적), 아오(청), 시로(백), 구로(흑)와 쓰쿠루는 단짝 친구들이다. 쓰쿠루를 제외한 네 명은 나고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하던 쓰쿠루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방학이 되면 나고야로 돌아와 변함없는 우정을 나눴던 친구들은 어느 날 쓰쿠루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 살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절교에 충격을 받은 쓰쿠루는 대학 생활 내내 방황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 다행히 학교를 졸업한 뒤 철도회사에 근무하게 되고 여행사에 다니는 사라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뀌게 된다. 애써 잊고 싶어하던 과거의 상처는 사라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깊은 오해를 풀게 되고, 관계 맺기를 주저하던 쓰쿠루는 사라와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

핀란드 남자와 결혼한 친구 구로를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택시 기사는 “휴가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멋진 두 가지라고들 하죠” 라는 명언을 남긴다. 삶을 끌고 가는 원동력은 여행과 친구이지만 바쁜 삶 속에서 마음만큼 쉽게 형성되기 어렵기에 애틋함으로 다가온다.

한 때는 매일 만나도 늘 그리워하는 관계였지만 시간이 흐르거나 사소한 오해로 헤어져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관계 맺기는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노력이 아닌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처럼 서로를 길들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많은 존재와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도록 둘 사이를 끈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책의 주요 장면마다 반복된 리스트의 작품인 ‘순례의 해’의 애잔한 음악이 귓가를 맴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내는 하루키의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즐거움도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다.

책을 읽는 동안 한 친구가 눈에 아른거렸다. 사소한 일로 토라져서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고 우리의 관계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남이 지속된 오랜 친구이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당장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서운했던 마음을 위로받고 다시 좋은 관계로 이어 가야겠다. 쓰쿠루가 용기를 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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