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도시락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3.10.1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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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새벽 4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방 틈으로 스며들었다. 며느리가 김밥을 싸는 중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며느리가 어제 저녁 퇴근 후 김밥재료를 잔뜩 사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가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라 도시락을 싸기 위해 피곤할 텐데도 잠을 제대로 못자고 정성껏 김밥을 싸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는 두 아이가 체험학습을 갈 때마다 손수 김밥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느라 일 년에 대여섯 번씩은 김밥을 직접 싼다. 김밥을 싸는 날엔 넉넉하게 싸서 우리 식구 모두가 맛있는 김밥을 먹는 즐거움이 은근히 기대도 되지만 무척 번거롭고 힘드는 일이기에 더러는 김밥 집에 가서 사 보내라고 해도 며느리는 손수 김밥을 싸느라 고생을 한다. 며느리의 김밥 싸는 솜씨는 일품이다. 친환경재료에 정성을 다하여 단단하고 예쁘고 맛있는 김밥을 만들기에 식구들이 농담 삼아 김밥 집을 해도 잘 될 거라고 할 정도이다. 현직에 있을 때 체험학습을 가보면 어머니가 손수 만든 김밥을 싸오는 어린이는 몇 명 안 된다.

물론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어머니들이 대부분이어서 이해하면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자녀를 위해 어머니의 정성스런 김밥을 싸주는 것도 훗날 어린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했었다.

며느리는 바쁜 직장생활에도 손자들의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아직은 어려서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알지 못하겠지만 훗날 정성껏 김밥을 싸던 어머니의 모습을 남겨 주리라 생각한다. 김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떠올린다. 김 한 장에 뚱뚱하게 밥을 넣고 그 속에 장아찌를 박아 만든 썰지도 않은 김밥을 먹으면서도 꿀맛 같던 소풍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처럼 좋은 도시락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도막내어 썰어서 주기 보단 통째로 둘둘 말아 주신 게 아니었을까? 그 모양과 재료야 어찌 되었던 그 시절엔 도시락을 못 싸온 아이들도 있었으니 어머니가 싸주신 그 김밥 맛은 일품이었음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과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어머니는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6 년 동안 도시락을 싸주시느라 무척 힘이 드셨을 텐데 교직에 있을 때 결혼하기 전 몇 년 동안에도 도시락을 싸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 바로 앞에 집을 얻어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그 시절엔 학교 급식은 생각도 못할 때여서 매일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야했는데 어머니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따끈한 점심을 매일 싸다 주셔서 은근히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매일 맛있는 반찬을 넉넉하게 싸주셔서 동료들과 함께 먹으며 많은 부러움도 샀다.

지금 생각하면 매일 맛있는 반찬을 바꾸어가며 해주시느라 힘이 드셨을 텐데 남들과 달리 따끈한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하다는 생각만 했으니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후회를 하며 도시락을 싸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지극한 모성애를 느끼고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신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가슴이 저려온다.

나도 결혼해서 남편, 아이 셋의 도시락을 싸 보았지만 도시락을 싸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매일 무슨 반찬을 싸야 하는지 걱정도 되고 출근을 서둘러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더구나 요즘처럼 여성들의 직장생활이 많아진 상황에서 자녀들의 도시락을 챙기는 일은 너무도 힘이 드는 일일 것이다. 이토록 힘든 도시락 싸는 일이었는데, 학교 급식이 생겨 주부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아이들에게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즈음, 돈만 있으면 전화 한 통으로 맛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무리 힘들고 바쁘더라도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일 년에 몇 번쯤은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해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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