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의 두 방법
존칭의 두 방법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10.17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람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흔히 남을 높이는 것만 존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남을 높일 수도 있지만, 자기를 낮춤으로써 남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존경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높이는 표현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것은, ‘크다’, ‘높다’, ‘빛나다’ 등이다. ‘크다’ 류는 ‘대통령’(大統領), ‘대장’(大將) 등이 있고, ‘높다’ 류는 ‘고관’(高官), ‘고등’(高等), ‘고평’(高評) 등이 있고, ‘빛나다’ 류는 ‘광림’(光臨), ‘영광’(榮光), ‘광복’(光復) 등이 있다. 여기에 ‘가장’이나 ‘끝’이 들어가면 더욱 높아진다. ‘지대(至大)하신 업적’, ‘지고(至高)의 인격’ 그리고 ‘성은(聖恩)이 망극(罔極)하옵니다’와 같은 최고격의 표현이다.

과거에는‘거룩하다’는 말도 많이 쓰였지만 탈종교화된 오늘날에는 종교분야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성전’(聖殿 또는 聖戰), ‘성물’(聖物), ‘성수’(聖水), ‘성탄’(聖誕), ‘성혈’(腥血) 등이다. 동양에서 ‘성’(聖)의 의미는 인격적으로 고상하거나 지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 강해, ‘성인’(聖人), ‘성현’(聖賢), ‘성왕’(聖王)처럼 쓰인다.

동·서양의 대략적인 차이는 서양이 상대방을 높이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동양은 자기 낮추기에 치중하는 데 있다. 서양에서 최고권력자를 부를 때는‘당신의 권능’(Your Majesty)을 강조하면서, 삼인칭으로 그들의 권위를 표현하는 것(His/Her Majesty: H.M.)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그대의 아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아래’(下)라는 표현을 자주한다.‘전하’(殿下)는 ‘그대가 사는 건물 아래에 있는 나’라는 뜻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폐하’(陛下)라고 하면서 ‘그대가 밟고 올라가는 섬돌 밑에 있는 나’를 들먹인다.

어려서 편지글을 배우면서 왜 상대방을‘귀하’(貴下)라고 부르는지 참으로 이상했다. 귀한 것(貴)까지는 좋은데, 왜 아래(下)라고 하는지 영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발밑에 있소’라는 말이 어떻게 상대방에 대한 호칭으로 쓰일 수 있는가,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말로 하자면, 상대방을 ‘발밑’이라고 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섬돌 아래이시여, 나를 굽어 살피소서’라는 말은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자어에서 ‘아래’가 들어가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것임을 몰라서 생겨난 의문이었다. 마치 ‘소생’(小生) 또는 ‘소첩’(小妾)과 같이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상대방에 ‘아래’를 붙여서 부르는 것은 여전히 무엇인가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나는 그 장군님의 휘하(麾下)에서 놀았다’고 할 때, ‘장군님’이 빠진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서양처럼 ‘그 휘하’인데 ‘그’(His/Her)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대하고 엄격한 호칭에서 생략을 한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다음의 해석이 나은 것 같다. ‘폐하’나 ‘전하’ 모두 2인칭 호칭이 아니다. 그들은 감히 부르지 못할 존재다. 따라서 ‘나’의 상황이나 위치만을 일컫는 1인칭 호칭이다.

요즘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여러 방식으로 부른다. ‘아가씨’, ‘아줌마’에다 ‘이모’와 ‘언니’까지 마구잡이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는 방식이 그들을 부르지 않고 나를 부르는 방식이다. ‘여기요!’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기요’는 참으로 오래된 존칭이다. ‘여보’도 ‘여보세요’에서 나왔다면, 지극한 존칭이 아닐 수 없다. 부부지간에도 감히 상대방을 부르지 못한 결과니 말이다. 독일어에서도 2인칭(Du)보다 3인칭(Sie)이 존칭인 것처럼, 남을 함부로 부르기보다는 차라리 1인칭인 나를 부를 일이다. ‘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