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검열의 시대
자기검열의 시대
  • 김훈일 <청주카리타스노인요양원 원장>
  • 승인 2013.10.1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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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훈일 <청주카리타스노인요양원 원장>

검열의 목적은 국가사회의 안녕과 질서의 유지, 공서양속(公序良俗: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의 보호, 기밀 유지 등에 있다. 검열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정치적·종교적 도구로 사용되면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제약하게 된다.

현대에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주요 검열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검열의 역사는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정치사회의 형성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로 검열을 법으로 규정한 것은 1907년에 대한제국 법률 제1호로 제정, 공포된 ‘광무신문지법’ (光武新聞紙法)이었고, 일제강점기와 제4공화국 헌법(유신헌법)때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강력한 검열을 시행됐다.

유신헌법이 시행되던 시절의 검열이 얼마나 일상화되고 집요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사건들이 많다. 이른바 ‘장발족’들을 한낮 대로에 줄 세워놓고 가위질을 해댔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미니스커트가 짧아 보이면 무릎 위 몇 센티인가를 자로 재서 허용치가 넘으면 과태료를 물렸다. 소설과 영화에 대한 심의에서는 사회윤리와 풍기문란을 엄격하게 따져 삭제했다. 시(詩)에 체제비판이나 허무주의의 내용이 담겨 있으면 출판을 금지했다. 불신풍조나 퇴폐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1965년부터 민주정부 수립 이전까지 32년 동안 금지곡으로 묶어놓은 대중가요는 무려 840여 곡에 이른다.

특히 인기가요 중에서 금지곡으로 정해진 죄목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고 코미디다. 송창식이 부른 ‘왜 불러’는 장발 단속에 저항하고 조롱했으며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노랫말 중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에서 묘지는 남한이고 태양은 북한의 김일성 아니냐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를 두고는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이유가 무엇이냐?’가 금지곡이 된 이유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 말고도 괴상한 억지로 금지시킨 곡도 적잖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코미디이다. 배호가 부른 ‘0시의 이별’은 통행금지 시간이 0시인데, 그 시각에 이별해서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금지곡이 됐고, 심수봉이 부른 ‘순자의 가을’은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의 이름이 들어가 금지곡이 됐었고,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킴’은 단신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이렇게 검열이 일상화 되면 더 무서운 검열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자기 검열이다. 자기 검열은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위협을 피할 목적 또는 타인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자기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이다.

얼마 전 칼럼의 내용에 관해서 충고를 들었다.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을 비판하면 언젠가는 그것 때문에 내가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고 세상 모든 진실을 알지도 못하는데 함부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내 글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나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비겁한 나 자신을 보았다.

이 지면은 칼럼이다. 시사성이 있는 문제나 사회의 관심거리 등에 대해 가볍게 평해보는 자리이다. 이런 글조차 남들의 평가나 특정세력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로 변하는 현실이 두렵다.

표현의 자유를 빼앗기고 다양한 의견이 제약되는 사회는 행복이 멀어진 사회이다.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 국가의 권력 기관은 비록 걱정스러운 사회혼란이 보이더라도 스스로가 국민을 통제하고 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문제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정치에 맡겨야 하고, 정치적 행태가 법과 질서를 어길 때 권력기관이 질서를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권력기관이 이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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