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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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가는길
지도를 보노라면 그 유명한 완도가 남쪽 끝머리에 매달려 있고 그 아래로 몇 센티미터 정도 내려가면 그리움 담은 보길도가 푸른 빛깔에 쓸려갈 듯 작게 놓여져 있다. 나는 거길 가는 것이다.

서대전 역에서 아침 5시30분 무궁화열차를 타고 호남선을 따라 풍요로운 가을의 풍경을 스치며 내려갔다. 어둡던 차창 밖은 어느새 아침햇살로 빛나고, 졸음에 겹던 내 눈꺼풀도 기지개를 켜며 지나치는 풍경에 여유로운 마음을 담는다.

푸른 하늘.

같이 달리는 아스팔트 신작로 길에 줄지어 가득 피어 흔들리는 코스모스, 바지저고리선 같이 둥그스름한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산들.

어느새 기차는 정읍을 넘어서 장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정읍 아래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이 땅들은 내 과거에서 곤혹스럽게 편견과 타성의 오판으로 오염되어 존재하였고, 지금은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고픈 땅들이다. 韓國을 길러내고,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을 낳은 이 땅들.

혹자는 전라도를 프랑스에 비유하고 경상도를 독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경상도는 독일 경제의 기적을 이루어 낸 라인강처럼 긴 낙동강이 있고,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면이 발달한 것이 흡사하며 언어의 투박함까지도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는 전라도처럼 많은 강들이 흘러 낮은 산과 평야가 발달되어 농업이 번창하고, 예술이 뛰어나고 언어조차도 지형을 닮아 부드러운 것이 전라도와 영락없이 닮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음식이 발달한 것까지 전라도와 닮았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러한 땅과 이곳 사람들을 생각도 없이 미워해 왔을까

많은 세월을 이들은 같은 민족에게 시달려 왔고, 왜구에게 시달렸고, 또 가난에 시달려 온 사람들이 아닌가. 원래 전라도 사람들은 농경민답게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억세게 만들고 착한 농경민으로만 놔두지 않았던 듯 싶다. 여러 가지 이유가 그렇겠지만 후백제를 무너뜨린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 중 8조가 우리 민족을 처음으로 지역편견의 담을 쌓게 한 것이리라. "차령이남 공주 강 밖의 주민은 간교하니 벼슬도 주지 말고 사돈도 맺지 말라"는.

이처럼 고려 태조에게서 비롯된 편견 속에서 벼슬길이 막혀버린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정열을 쏟아 넣은 길은 오로지 예술의 길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가부끼와 중국의 경극에 견줄만하며 외국의 오페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나오고, 또한 오늘날 세계 예술 애호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을 하는 고려청자도 전라도 부안이나 강진에서 구워낸 것이 아닌가.

고려시대는 그렇다고 치자.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성계가 황산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자 전주(완산)사람들은 오목대에서 개선잔치를 베풀고 그를 환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오백년 동안에도 전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푸대접이었다고 한다. 그뿐이랴. 이쁜 놈은 경기도 땅과 충청도 땅에, 미운 놈은 함경도 변방에 전라도 남쪽변방이었으니. 더구나 역적으로 몰린 똑똑한 이()들은 전라도 해안과 도서지방에 귀양살이를 보내니 그 땅은 외돌려져 설움을 가져야만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느새 열차는 광주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들고 나와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광주에서 완도까지의 직행버스를 타고 영암을 지나친다. 차창으로 다가오는 월출산(月出山). 나의 오관은 옴싹할 수도 없었다. 그저 경탄의 숨소리 뿐.

누런 들판의 한 복판에 어찌 그것이 우뚝, 신비롭고 장엄하게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달리는 차에서 내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정봉까지 올라나 가볼까

그러는 사이에 해남- 그리고 완도(莞島)다.

예전엔 똥개도 동전 한닢은 물고 다녔다는 풍성한 완도.

해는 이미 서서히 넘어가고 보길도로 들어가는 배는 끊어진지가 오래였다. 왼종일 지친 몸을 싸구려 모텔에 의지하기로 숙소를 정하고 밤바람을 쏘이며 부둣가에 나가 싱싱한 바닷고기를 구경도 하며 여행자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천천히 걷다가 숙소로 돌아 왔다.

그리고, 내일 아침 배를 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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