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울어예는
기러기 울어예는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10.0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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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기러기는 가을의 풍광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기러기는 보통은 가을 하늘을 떼지어 날아가는 시각적 풍광으로 다가오지만, 가끔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서 울음을 우는 청각적 이미지로도 각인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청각은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이것이 사람들의 감수성을 더욱 자극하기도 한다. 당(唐)의 시인 위응물(韋應物)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향에서 기러기 소리를 듣고 고향 생각에 젖었다.

◈ 기러기 울음(聞雁)

故園渺何處(고원묘하처) 고향은 아득하여 어디인지 가물가물

歸思方悠哉(귀사방유재) 돌아가고 싶은 생각 바야흐로 끝이 없네

淮南秋雨夜(회남추우야) 회남 가을 비 내리는 밤

高齊聞雁來(고재문안래) 높은 저택에 기러기 날아오는 소리 들리네

 

※ 사람들은 왜 기러기를 보면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일까? 아마도 기러기가 겨울 철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러기는 더운 여름을 시베리아 일대에서 나고, 가을이 되어 추워지면 따듯한 양자강 아래로 이동해간다. 사실 기러기는 일정한 고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러기는 기후의 변화에 적응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할 뿐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고향 그리움과 연계시켜 생각하곤 하였다.

이 시의 고원(故園)은 우리말로는 고향(故鄕)이다. 시인의 고향은 아득하여 어느 곳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시인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향을 멀리 떠나와 있고, 그것도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시간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고향이 어디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고향을 잊은 것은 아니다. 거꾸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시인은 이제 어디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뿐, 고향이 어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시인이 지금 머물고 있는 회남(淮南)이라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회남(淮南)은 절강(浙江)성에 위치한 중국 남쪽 지방으로 당(唐)대에는 동남의 변방이었다.

시인이 이곳까지 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타향에서의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철이 가을이고 시간은 밤이다. 거기에 비까지 내린다. 타향에 가을 밤에 비에, 시인의 외로움은 점점 정점으로 치닫는다. 밤이 깊었지만, 고향 생각에 도무지 잠들 수 없던 시인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선다. 이처럼 외로움에 잠 못 이루고 밖으로 나서는 장면은 중국시에서 흔한 것이지만, 보통은 달구경을 하며 고향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렇지가 않다. 시인이 자신이 머무는 집의 제일 높은 곳에 오른 것은 고향을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서였지만, 막상 비 내리는 깜깜한 밤인지라 눈으로 보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었다. 시인의 눈이 실망을 금치 못한 사이, 뜻밖에도 귀가 그것을 만회하는 일이 벌어졌다.

밤하늘에서 기러기가 북쪽 땅으로부터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아마도 그 기러기는 시인의 고향 쪽에서 날아온 것이리라. 시인은 결국 기러기 소리로 향수를 달랜 것이다.

가을은 외로움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고향이 그리워, 외로움에 잠 못 이룬다 할지라도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리울 때는 그리워하고, 외로울 때는 외로워해야 사람이다.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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