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머리의 이름
우두머리의 이름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10.0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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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도 외우기만 했지 통치자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진데,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전문가들도 그런 것 같다.

말인즉슨 이렇다. 우리 시절에는 신라임금의 칭호를 순서대로 외워야 했다. 국사시험에서 순서대로 쓰인 것을 고르라는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거서간(居西干)이었는데, 제2대는 차차웅(次次雄)으로 바뀌었다. 제3대 이후부터는 이사금(尼師今)으로 불려 제16대(삼국유사) 또는 제18대(삼국사기)까지 내려왔다. 그다음부터는 마립간(麻立干)이라는 호칭이 쓰였다.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으로 되어있는 답항을 고르면 맞고, 뒤바뀐 것을 고르면 틀렸다. 단골 문제였다.

그런데 그 이름들이 모두 우리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한자를 빌려 신라의 최고지도자 이름을 옮긴 것이다. 그러니 그 이름이 본디 무슨 뜻이었는지 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분분하다.

이를테면 이사금은 이질금(尼叱今; 爾叱今), 치질금(齒叱今)이라고도 불린다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제2대 임금이 죽을 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너희들 가운데 연장자가 대를 이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사금의 뜻은 연치(年齒)가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이사금의 ‘이’나, 치질금의 ‘치’(사실 이두로 읽을 때는 ‘이’로 읽어야 한다)나 모두 우리말의 ‘이’를 가리킨다는 것인데, 통일신라시대 김대문의 설이다.

이가 왜 나이를 가리키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덧붙이면, 소의 나이를 셀 때 입을 벌려보듯이, 사람도 이로 연륜을 상징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아직 이빨도 안 난 것이 덤벼?’라는 표현이다. 아들과 사위를 가리지 않고 권력계승을 하는 체제라서 생소하긴 하지만, 이사금은 혈연관계를 넘어선 공통된 권위를 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마립간 설은 더 재밌다. 김대문에 따르면, 마립은 말뚝을 가리키는 것으로 권력의 중심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힘의 그루터기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頭)나 마루(宗)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고구려의 막리지(莫離支)와 통한다는 것이다. 이병도의 설인데, 당시에도 부자상속의 관념이 있었다면 모를까, 여성도 임금을 할 수 있는 사회였기에 의문이 든다. 종(宗)은 철저한 부계의 유가논리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후 선덕(제27대), 진덕(제28대), 진성(제51대) 등 세 여왕이 있었다. 오히려 마립간의 간은 징기즈칸의 ‘칸’이라고 주장했던 중학교 때 교감선생님의 말이 더 나보인다.

법흥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제도를 정비하면서 중국식 칭호인 ‘왕’(王)을 받아들인다. 좋게 들릴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부지불식간에 속복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왕의 위에는 황제(皇帝)가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차차웅은 제사장의 뜻이 포함된 신정정치시대를 보여준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신라의 임금님은 중세시대의 교황과도 같은 지위로 세계최고의 지도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의 최고지도자를 우리는 ‘대통령’으로 부르기로 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로마공화정시대의 집정관을 ‘통령’이라고도 번역했는데, 거기에다 ‘대’ 자를 하나 더 붙인 것이다. ‘총통’이라는 말은 히틀러와 연관되어 별로 좋지 않게 들리는데도, 중국은 민주선거로 뽑힌 대통령도 여전히 총통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오바마 총통’이다.

과연 우리의 최고지도자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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