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보다 가을
봄보다 가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3.09.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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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 논쟁 중 흔한 것 하나가 봄이 좋으냐 가을이 좋으냐일 것이다. 또한, 봄은 여자의 계절이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니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봄과 가을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계절이라는 것, 그리고 취향에 따라 그 선호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울긋불긋한 풍광이 주는 감각적 매력이 봄과 가을을 좋아하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봄과 가을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봄이 청춘이고 희망인 데 비해, 가을은 장년이고 성숙이다, 봄의 생명이 생동감이라면 가을의 생명은 쓸쓸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가을을 좋아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은 싫어하기도 한다. 물론 쓸쓸함에도 불구하고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당(唐)의 시인 유우석(劉禹錫)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 추사(秋詞)

自古逢秋悲寂寥(자고봉추비적요) 옛날부터 가을을 만나면 슬프고 쓸

我言秋日勝春朝(아언추일승춘조) 나는 가을날이 봄 아침보다 낫다고

空晴一鶴排雲上(공청일학배운상) 하늘개자 학 한마리 구름을 헤치고

便引詩情到碧宵(변인시정도벽소) 곧 시심을 끌고 푸른 하늘에 다다르네



※ 가을을 만나면, 사람들은 슬프고 쓸쓸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아주 옛날부터 줄곧 그래 왔다는 전제 아래 시인은 자신은 가을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시를 시작한다. 가을날이 봄 아침보다 낫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왜 봄날 아침일까? 봄날 중에서도 아침이 가장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일 년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때는 봄날의 아침이 아니라, 가을날이다. 슬프고 쓸쓸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가을날을 이처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늘이었다. 그러면 시인에게 가을 하늘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우선 맑은 모습이다. 비가 그친 뒤 갠 하늘이야말로 가장 맑은 모습 아니던가? 색깔은 물론 파랗다. 다음으로는 생동감이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이 되자 그 파란 공중을 희디흰 학(鶴) 한 마리가 나타나 날다가 높이 올라 구름을 만나면 구름을 헤치면서까지 날아오르는 생동적인 광경은 가을 하늘의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맑고도 생동적인 하늘의 모습 때문에 시인은 가을을 봄보다 좋아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을 하늘에 반한 시인의 시심(詩心)은 학(鶴)에 이끌려 단박에 구름을 헤치고 파란 하늘에 이른다고 한 것은 과장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다.

봄 못지않게 가을은 좋은 계절이지만, 슬프고 쓸쓸한 느낌때문에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낙엽이나 부쩍 차가워진 날씨, 저물어가는 한 해와 같은 것들이 슬프고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가을이라고 반드시 이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 개자마자 나타나는 부쩍 맑아진 하늘 빛깔이며 이처럼 맑은 하늘에서 구름을 헤치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 학(鶴)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슬픔이나 쓸쓸함과 거리가 멀다. 이렇게 보면 가을도 봄 못지않게 충분히 생동적이다. 가을 풍광에서 쓸쓸함을 느끼기보다는 생동감을 읽어낸다면 가을은 더이상 슬픈 계절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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