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초
용담초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9.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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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모처럼 잠꾸러기가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서성거린다. 그래도 꽃은 꼭 다문 입술은 도무지 열 생각을 안 한다. 출근하고 햇살이 퍼지면 꽃잎이 열리기 시작하여 서너시쯤이면 다시 봉오리를 오른쪽으로 말고 포속으로 숨어들겠지.

용담(龍膽)을 풀이하면 용의 쓸개다. 뿌리가 용의 쓸개만큼 쓴맛이어서 용담이란 이름을 얻었다나. 그런데 누가 용의 쓸개 맛을 보았단 말인가. 어찌했거나 용은 신령스런 존재이니 용의 쓸개가 더 없는 영험한 약재임을 상징적으로 강조하는 의미인 것 같다.

용담은 색깔도 독특하다. 보라색의 신비로움과 푸른빛의 슬픈 이미지가 절묘하게 섞여 녹아 있는 듯해 가을의 쓸쓸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한번 보면 한참동안 눈에 밟히는 그런 꽃이다. 씨앗을 받아서 뿌려도 잘 자라고 옮겨 심어도 잘 자라는 강인함 때문에 들꽃 중에서는 드물게 색감이 너무 아름다운 꽃이다.

작은 미세씨앗에서 자라 여러해살이풀로 지난 추운 겨울과 한여름 더위를 잘 참고 견뎠지만 줄기는 가냘프게 자랐다. 땅으로 눕거나 휘어졌는데도 잎겨드랑이에 촘촘히 꽃봉오리를 맺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적당히 휘어진 줄기와 날카롭지 않은 잎과 꽃대를 올려 통꽃을 피운다. 꽃의 아랫부분이 봉긋하게 부풀어 여러 송이가 한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피는 모습이 마치 의좋은 오누이 모습 같다.

오빠와는 연년생이다. 오빠는 나 때문에 엄마 젖을 제대로 못 먹고 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장남이라면 끔뻑하셨던 엄마의 사랑은 사남매 중 반은 차지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남 위주의 재산상속과 오로지 큰아들만 바라보며 사는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나머지 형제는 적잖이 마음의 서운함도 안았다.

어릴 때부터 오빠와 유난히 친하여 오빠가 가는 곳을 많이 따라다녔다. 믿고 의지했으며 중학교까지는 같이 다녀서 오빠 덕을 많이 보았다. 오빠는 나보다 무엇이든 월등히 잘해 우리 집에서 인정받았다. 부모님의 희망이었고 내가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이런 오빠가 열등감보다는 부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차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최고의 사이좋은 오누이로 지냈다.

요즘 내 몸은 여름과 겨울을 넘나든다. 폭염 속 비지땀을 흘리다가 어느 순간 오싹 한기가 오는 증상이 하루에도 수십번 반복된다. 무기력함과 우울감 같은 것, 뭔지 모르게 온몸이 달라지는 느낌, 엄마한테 소홀하게 한다고 습관처럼 오빠를 미워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항상 “오빠 너무 미워하지마라. 그래도 형제, 오누이밖에 없는겨?” 하신다. 따지고 의심하는 나는 요즘 머리만 가지고 사는 존재인 것 같고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나 자신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나에게 찾아온 낯선 손님은 남들이 말하는 그냥 갱년기 증상일까? 그렇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지난해에는 용담의 꽃봉오리가 가을 하늘이 내려온 듯 진한 청보라색으로 시선을 잡고는 했다. 다섯가닥으로 갈라진 종모양의 꽃잎을 꽃받침 속에 숨기고 시계방향으로 말고 있다. 기온이 서늘해지고 하늘빛이 내려앉아야 봉오리를 여는데 짙어지는 가을의 서정만큼이나 시린 빛깔로 다가와 서로 얼싸안고 받쳐주면서 낙엽 지는 가을을 빛내주고 있다.

용담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저려온다. 오누이를 닮은 모습의 꽃은 저리도 아름답게 피고 지는데 그 의좋던 우리 남매는 어찌 이리도 서운한 사이가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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