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님
큰 손님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3.09.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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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마음이 분주하다. 서른을 넘긴 아들이 여자 친구를 초대한단다. 더 할 나위 없이 기쁘고 설렌다. 한편 어떤 아가씨일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커피가 좋을까, 녹차가 좋을까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만 콩을 볶는다. 청소검열을 할 것도 아닌데 커튼 빨기, 목욕탕 청소, 화분정리에 베란다 창틀 하나하나 문갑 위의 소품들 먼지 털기 등등 청소하느라 힘을 소진했다. 생각해보니 내 생애 이렇게 귀하고 어려운 손님을 맞이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나는 시집 올 때까지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니 집에는 늘 손님이 있었다. 특히 서울에 사시는 작은할아버지 식구들이 큰 손님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긴장하셨던 것 같다. 없는 살림에 어려운 손님이 오신다니 그럴 수밖에, 오 십 년 전 내가 어릴 때, 그때는 서울이 황금의 도시, 마법의 도시 인 줄 알았다. 한때 우리가 미국을 꿈에 나라로 생각한 것처럼 시골에 살던 나는 서울이라는 곳을 미국쯤으로 상상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큰고모가 부산으로 시집을 가면서 고모부가 오신다는 연락이 오면 어머니는 곡주를 담그셨다. 집에서 담근 술을 좋아하시던 큰 고모부가 오시면 그 술을 대접하는 것을 보았다.

아들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데 뭘 해야 할지 나는 허둥대기만 했다. 한 번의 달콤함으로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말끔하게 청소하고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손님맞이 이리라.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질 것인가, 있는 그대로 보여 주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집에 들어서면 깨끗하고 상큼한 기분이 들게 해 주고 싶었다. 환영하는 뜻으로 장미꽃을 한 다발 꽂아 놓고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도록 카펫을 펴고 나도 밝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꽃무늬 치마를 입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조심스럽고 내 한 마디 말이 아들의 장래가 결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으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한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첫 만남이다. 나의 시어머님도 내가 인사 왔을 때 이러한 마음이셨을까. 그 때는 나 어려운 것만 생각했지 어른들 어려움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자식이 상전이라더니 상전 중에서도 상상전이다.

나는 그동안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번듯한 가구 하나가 없다. 시집 올 때 장만한 장롱을 30년 째 그대로 쓰고 있고 다른 가구들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쓰면서도 초라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좀 걸린다. 우리 집은 화려한 가구로 장식하기보다는 웃음으로 채워진 집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았다. 막상 아들이 손님을 데리고 온다 하니 왠지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무튼 복잡하고 어렵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고 보낸다. 또 내가 손님이 되어 방문할 때도 많다.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내가 손님으로 가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자리에 손님으로 갈 때도 초대한 사람을 생각해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이나 행동 또한 초대해 준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사실이다. 손님을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누구를 만족시킨다는 것도 욕심인 듯하다. 적어도 반가워하는 뜻만 전해질 수 있다면 족할 것이다. 나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내 마음을 다해 반갑게 맞이했다. 몸집이 작고 예쁜 그 애는 과일 하나하나를 포장해서 저보다 더 큰 과일바구니를 만들어 들고 왔다. 아마 자기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한 것 같다. 나는 고맙게 받으며 내 마음을 전했다. 손님이 돌아가고 스멀스멀 몸살 끼로 온몸이 나른했다. 몸은 천근인데 환하게 웃던 그 애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또 언제 올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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