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됨이 없는(思無邪)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
삿됨이 없는(思無邪)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9.2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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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삿됨이 없는(思無邪)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 시경(詩經)의 작품들을 다음과 같이 한 구절로 표현하였다.

‘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

시경의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삿됨이 없는 생각들이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중에서도 특히 ‘思無邪’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삿됨이 없다’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중심의미는 생각이 진솔하다는 것이다. 시(詩)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인간의 진솔한 마음과 정서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곧 시에서 삿됨이 없다는 것은 진솔한 마음을 담백하게 표현함을 의미한다.

공자는 시를 두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무사’의 가치가 어디 시에서만 소중하겠는가? 사람 사는 일(事) 모두가 삿됨이 없어야 한다. 사람 사는 일에서도 사심 없이 일에 전념하고 진솔하게 성의를 다하는 마음가짐을 ‘事無邪’의 자세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일에는 삿됨이 없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네 삶은 안 그렇다.

정치는 국민 앞에 진솔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가들은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을 뒤에 감추고 겉으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정치가의 말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곧 그들도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진솔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것은 장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장사꾼들의 말은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말을 늘어놓지만 내심으로는 자신들의 이윤을 최고의 목표로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선거 시기에는 진솔한 생각과 삶의 태도는 실종되고, 급기야 사무사를 위장하는 말과 행동이 난무하는 혼탁한 세상이 된다. 정치가들은 권력의 야욕을 공약이라는 미명으로 감추어 위장한다.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공허하다. 그들의 말은 양식을 저버리니 곡학(曲學)이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꾸미니 아세(阿世)라 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이 진솔함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진솔한 척한다. 그래서 선거과정에서는 허위와 위장, 협잡이 득세하고, 삿됨이 없는 마음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허위와 위장의 효용이 얼마나 오래갈까? 늑대 소년에게 사람들은 영원히 속지 않는 법이다. 한두번의 허위와 위장으로 눈앞의 이익을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항상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입에 발린 말로 사람을 현혹하기보다 진솔한 마음으로 일에 임하는 것이 좋다.

생각과 일에 임하여 삿되지 않는 것, 사무사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고 처세다. 사무사는 시의 정신이며, 삶의 태도일 뿐만 아니라, 일에 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思無邪’의 태도에 입각해서 살고 있다. 곧 일반적으로 진솔한 마음으로 사심 없이 일에 전념하면서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신뢰를 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말의 저의를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기보다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삿됨 없는 마음(思無邪)을 업신여기면 큰 코를 다친다. 마음이 순수하면 쉽게 속지만 속은 줄 알면 순수한 마음은 다시는 열리지 않는 법이다. 한두 번의 미사여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이는 한시적인 효과만을 가질 뿐이다.

마지막에 웃고 싶으면 삿됨 없이 진력하는(思無邪) 태도로 일에 임하는 것이 좋다. 침묵하는 다수는 삿됨 없이 진솔하게 일에 몰입하는 인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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