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의 노래
가을바람의 노래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9.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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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케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바람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가을이 왔음을 직감한다. 도대체 바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과학적으로 보면 바람은 기압차에 의한 공기의 흐름에 불과하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그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 세상 어딘가에 사계절이 대기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바람을 타고 나타나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당(唐)의 시인 유우석(劉禹錫)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 가을 바람의 노래(秋風引)

何處秋風至(하처추풍지) 어디에선가 가을바람 이르러

蕭蕭送雁群(소소송안군) 쓸쓸히 기러기떼를 보내도다

朝來入庭樹(조래입정수) 아침 나절 마당 나무 사이로 들어오니

孤客最先聞(고객최선문) 외로운 나그네가 가장 먼저 그 소리를 듣는 구나

※ 가을 바람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가을 바람이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게 세상 이치이다. 가을 바람이 이르자, 기러기 떼가 자리를 뜬다.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지만, 떠나는 모습은 언제나 쓸쓸한 법이다(蕭蕭).

사람들은 아무도 느끼지 못했지만, 기러기는 낌새를 알아챘던 것이다. 결국 기러기는 가을 바람이 떠나 보낸 것(送)이다. 가을 바람이 와서는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러기를 남쪽으로 떠나 보내는 것이었다. 이 일을 마친 가을 바람은 시인이 머물고 있는 집의 마당에 들어와 마당의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른 아침인지라, 이를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외로움에 잠 못 이룬 채, 아침을 맞은 나그네가 제일 먼저 가을 바람 소리를 들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기서 나그네는 물론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집을 떠나 객지의 친지 집에 머물고 있다. 집을 떠나면 누구나 외롭기 마련이고, 외로운 사람은 계절의 변화에 몹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일반적이다. 집을 떠난 외로움은 가을의 쓸쓸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촉매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당 나무에서 가을 바람의 소리를 알아챈 시인의 감수성은 참으로 예민하다.

가을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김없이 다다른다. 하늘을 떼지어 나는 기러기는 바로 가을 바람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령(傳令)이다. 가을 바람이 와서, 곧 추워질 것을 알기 때문에 기러기는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기러기는 가을 바람의 도래를 본능적으로 알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가을 바람이 왔음을 본능이 아닌 정서(情緖)로 알아챈다. 그 정서(情緖)는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운 마음과 쌀쌀해진 날씨가 결합하여 쓸쓸한 정서(情緖)로 나타나고, 이것이 바로 가을의 느낌이다. 가을이 오는 것은 피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쌀쌀한 날씨가 꼭 나쁜 게 아니듯이, 외로움도 꼭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쓸쓸함 역시 피해야만 할 정서는 아니다. 쓸쓸함은 사람을 영글게 하고, 정감을 풍부하게 한다. 가을이 좋은 것은 바로 이 쓸쓸함 때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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