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
알밤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3.09.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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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띵~동~’대문 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어 문 열림을 누르고 화면을 보니 남편이었다. 아침 일찍 친정 남동생과 함께 알밤을 주우러 갔다 오는 길이다. 세 시간이 지난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가져간 시장 가방을 받아드니 묵직했다. 신문지를 거실에 펴고 밤을 쏟았다. 소담스런 모습이 먹음직스럽다. 밤알이 아주 굵었다. 밤은 여러 번 보았지만, 산에서 직접 주어온 것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느낌이 신기했다.

모처럼 추석연휴라 남편이 시간을 내어 남동생의 일정에 합류한 것이다. 늦으면 사람들이 모두 주워가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야 한다고 식사도 거르고 따라나섰다. 배고픈 것을 못 참는 남편인데 그래도 간 것을 보면 마음이 끌린 것 같다. 거기다 알밤도 흡족하게 주어 왔으니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옆에서 보는 나도 덩달아 좋으니 말할 것도 없겠지.

어린 시절 이맘때가 생각난다. 고향의 동구 밖에 밤나무 두둑이 있었다. 길옆에 있는 것이어서 아침 일찍 가서 줍는 사람이 임자인 셈이다. 알밤은 아침 일찍 가면 밤중에 떨어져 풀숲에 갈색 빛 알몸을 드러낸 채 누워 있다.

작은 소쿠리를 가져가 그곳에 알밤을 주워담는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신이 났는지 웃음이 절로 난다. 누가 올까 봐 이쪽저쪽 살피며 민첩한 손놀림이 시작된다. 밤새 내린 아침이슬이 발목을 적셔도 아랑곳없다. 풀을 헤치며 밤을 줍고 나면 그때서야 눈을 비비며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알밤이 담긴 소쿠리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몇 개 주고 오면 될 것을 그때는 주지 않고 그냥 왔는지. 지금 생각하니 참 철이 덜 들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내가 주운 것이라는 생각에 나눔의 정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알밤은 밤 가시로 둘러싸인 껍질 속에서 익을 때까지 다른 이들이 손을 대지 못할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다. 가을이 가까워 오면 영글어 스스로 가시 속에서 벌어져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먹거리가 된다. 마치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처럼 밤 가시도 알밤을 보호하기 위해 긴 시간 비바람과 더위를 견디며 지낸 것이다. 그런 추억 속에 있던 알밤이 눈앞에 있으니 문득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살아계시는 동안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두 분의 모습에 목이 멘다. 더 좋은 것, 맛있는 것은 모두 자식에게 주시고 자신은 알밤이 쏙 빠진 빈 껍질처럼 삶을 살다 가신 분이다.

내가 나이 들고 자식을 낳아 길러 결혼시켜 가정을 이루게 하고 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늦게 깨닫고 부모는 계시지 않으니 때늦은 후회만 가득히 마음에 가득하다. 지금은 효도하고 싶어도 옆에 계시지 않으니 허공의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된다.

알밤을 고른다. 벌레 먹은 것, 썩은 것은 버리고, 굵은 것, 작은 것은 깨끗이 씻어 보관하고 일부는 삶아 내 나름대로 생각해낸 요리를 한다. 삶은 밤을 잘라 속을 파낸 다음 그 속을 으깨어 꿀과 함께 버무려 다식판에 찍어 밤 다식을 만든다. 정성들여 찍어낸 다식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손녀딸이 할머니 집에 오면 간식으로 내어줄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맘이 설렌다. 부모의 온갖 희생을 따라 갈 수 없지만, 흉내라도 내며 남은 삶을 가꾸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하루였다. 부모님이 옆에 계셨으면 알밤으로 만든 밤 다식을 드시며 얼마나 좋아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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