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와 라이벌
원수와 라이벌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9.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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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5000여 년의 역사 시대 중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던 시기는 5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면 비겁한 사람이 되고, 또 싸움에서 지면 비참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비겁하거나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전쟁과 투쟁에 대비해 준비를 한다. 전쟁과 투쟁, 경쟁은 다른 사람을 제치고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인류 문명이 전쟁 가운데 발전해왔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사표가 되는 성인들은 언제나 평화와 공존을 높은 가치로 삼았다. 공자의 인(仁), 예수의 사랑, 부처의 자비(慈悲)는 전쟁과 투쟁을 일삼아서는 인간다운 삶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한다.

타인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자의 사상, 무력 혁명으로 체제를 전복하기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예수의 생애,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도 비극적인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애로운 마음으로 모든 생명체를 대해야 한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모두 자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생명체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곧 전쟁이나 투쟁의 논리에 빠져서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동서양의 교육은 모두 성인들이 설파한 가치를 구현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곧 자신의 목적 실현을 위한 싸움과 투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경험한다. 현실사회는 약육강식의 경쟁과 투쟁의 구도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 내 가족, 내 나라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 때 사랑과 평화의 이상을 지닌 사회 초년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경쟁의 논리에 물들어 간다.

오늘날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현실과 용서, 사랑 그리고 자비의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동양의 고전은 이 같은 갈등을 조정하는데 탁월한 방식을 제시한다. 이상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정도(正道)는 변화무쌍한 현실을 낱낱이 담을 수 없다. 따라서 고전은 현실의 변화에 때에 따라 알맞게(時中) 대처하는 권도(權道)를 행위양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권도란 권력(세속의 이익)을 획득하고, 공고히 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곧 오늘날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이나 싸움을 종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권도는 결코 정도(正道)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상황 속에 불변하는 정도(常道)를 구현할 수 있을 때에만 권도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권도가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면 이전투구의 양상이 벌어진다. 곧 남을 죽여서 자신을 살리거나 남을 망하게 하여 자신을 흥하게 하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이 같은 싸움 방식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의 권도라고 말한다. 소인의 권도 행사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낳는다.

그러나 군자의 정도를 지키는 권도 행사는 겸손한 승리와 당당한 패배를 가능하게 한다. 권도가 정도 안에 머물 때 승자와 패자는 상생의 라이벌이 된다.

오늘날의 경쟁이 원수를 만들어내기보다 승패와 상관없이 상생할 수 있는 라이벌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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