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부싯돌
달팽이와 부싯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9.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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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나이가 들수록 욕심 사나워지고, 고집불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남의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잘 참아 넘기게 되는 사람도 있다.

평생을 자기 욕심껏 살면서 아무런 갈등 없이 살 수 있다면, 이 또한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심적 갈등 없는 삶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갈등은 있게 마련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훌훌 털어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마음을 무겁게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별일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히 등장하는 것이 바로 술 마시기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술 마시기를 통해 스스로를 달래곤 하였다.

◈ 술을 마주하고2(對酒2)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을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 부싯돌 속 불빛처럼 빠른 세월에 맡긴몸.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 부귀는 부귀대로 빈천은 빈천대로 즐기리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 입을 열고 웃지 못하면 그가 곧 바보라네.



※ 달팽이(蝸牛)라는 연체동물은 그 자체가 매우 작은 몸이다. 그런데 그 작은 몸에 좌우로 두개의 뿔이 붙어 있다면, 그 크기는 얼마나 작겠는가? 그 작고 작은 두 뿔 위에 각각 하나씩 나라가 세워져 있고, 그 두 나라는 늘 전쟁을 일삼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얽혀 크고 작은 싸움을 멈추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달팽이 두 뿔 위의 싸움처럼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고 시인은 일갈한다.

물론 시인 자신도 평소 같으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터이지만, 술을 앞에 두고 앉자, 평소와 달리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지며, 세상사에 대해 초연한 심적 상태가 된 것이다. 중국시에서 술은 실제의 장면이기보다는 상징적인 기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주(飮酒)를 통해, 속세를 벗어나 탈속(脫俗)의 공간으로 이동하는데, 이 공간의 특징은 세상 근심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의식에서 연유했다고 할 수 있다. 술이 도도해진 시인의 상념은 다툼의 하찮음에 대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생 자체의 의미에까지 시인의 상념은 미치기에 이르렀다.

시간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짧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부싯돌(石火)에 튀는 불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리라. 바로 부싯돌의 불꽃만큼이나 짧은 것이 인생이라고 시인은 자각한다. 그렇게 짧은 와중을 살면서도 사람들은 수명의 길고 짧음에 지나치게 연연해한다. 어차피 짧은 게 인생인데, 그걸 가지고 길고 짧은 걸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부자면 어떻고 가난하면 어떻단 말인가? 그저 할 일은 인생을 즐기는 일뿐이라고 시인은 일갈(一喝)한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살되, 인생의 관건은 얼마나 즐기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 입을 열고(開口) 웃고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입을 꽉 다문 채 웃지 못하는 사람은 곧 바보(癡人)라는 것이다.

꼭 술을 앞에 놓지 않아도 좋다. 현실을 완전히 도외시한 삶은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가끔은 한발짝 떨어져서 인생을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다투고 있는 것이 과연 인생을 걸고 다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짧은 인생 속에 정작 의미를 둘 게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술을 마주한다면야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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