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차례 생략… “우린 해외여행 간다”
'노는날' 차례 생략… “우린 해외여행 간다”
  • 하성진 기자
  • 승인 2013.09.16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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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명절보내기 '이젠 옛말'-확 달라진 풍속
최대 9일 황금연휴… 국내·외 여행상품 인기

한국교통연구원 설문… 10명중 4명만 귀성길

핵가족화 가속… 역귀성 ↑·'가족끼리'만 보내

"달라진 풍속도 불구 조상 얼·문화는 새겨야"

올해 추석 연휴는 18일부터 22일까지 주말포함 5일간이다. 직장인들은 16, 17일 연차를 내면 최대 9일간 ‘황금연휴’를 즐길 수 있다.

평년보다 연휴 기간이 길다 보니 명절을 집에서 보내기 보다는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등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명절이라는 전통 관념이 핵가족 시대를 맞으면서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긴 연휴 우리는 여행 간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황성수씨(35)는 바쁜 업무 때문에 올여름 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황씨는 이번 연휴 때 평소 가보고 싶었던 홍콩으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기독교 신자인 황씨는 홍콩 호텔에서 예배를 보기로 했다. 황씨는 “우리 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아 추석 날 고향의 큰집에 모여야 하는 의미가 없다”며 “예배를 통해 충분히 조상의 음덕을 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3년 차인 강미라씨(30·여)는 추석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다려진다. 예전 같았으면 시댁 가풍에 맞춰 새 며느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겠지만, 강씨는 올해 추석엔 시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떠난다. 추석 하루 전인 20일 제주도로 출발, 21일 오전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 국내외 막론, 여행상품 불티

추석 연휴 기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항공편과 숙박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다.

추석 연휴에 청주국제공항에서 이·착륙하는 국제선은 물론 국내선 항공편 예약은 진작에 매진됐다.

단양 대명콘도와 제천 리솜리조트는 객실은 이미 꽉 찬데다가 대기자도 많아 추가 예약을 아예 받지 않는다.

국내 최대 관광지인 제주도 역시 항공편을 구하기 어렵다. 올 추석 연휴 기간 제주도에는 관광객 21만여명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추석과 개천절 연휴가 징검다리로 이어졌던 지난해 6일간의 제주 관광객 18만여명보다 19%가량 증가한 수치다.

추석 전후로 인천공항 국제선의 이용객 수는 최근 수년간 급증했다. 지난해는 전년보다 15.7% 늘어난 50만 6982명으로 사상 최초로 50만명 선을 돌파했다.

대부분의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이 3∼5일 일정임을 고려하면 연휴 전체를 해외에서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연휴 기간 해외여행 상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롯데JTB 등 국내 대형 여행사가 내놓은 추석연휴 해외여행 상품은 사실상 매진 상태다.

청주의 모두투어 대리점 관계자는 “올 추석은 공식 연휴 기간이 5일인 데다, 최장 9일의 연휴를 즐길 수 있어 장거리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세부와 베트남 같은 동남아 지역과 괌, 중국 등 5일 일정의 상품이 많이 팔리고 있다. 10~12일 일정의 미주나 유럽지역 여행 상품도 인기다.

G마켓에서 지난달 판매된 추석 여행상품 가운데 미국ㆍ캐나다 호텔 예약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2%나 급증했다. 유럽 호텔 예약도 156% 늘었다. 인터파크의 추석 연휴 동안 유럽행 항공권 판매도 지난해보다 97% 증가했다.

◇ 국민 10명 중 4명만 귀성

올해 추석 연휴에도 3500만명 이상의 국민이 대이동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귀성객은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달 16~21일 전국 89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전화 설문조사를 토대로 추석 특별교통대책기간인 17~22일 전국 이동(귀성·귀경) 인원을 지난해 추석 3348만명 보다 4.9%(165만명) 늘어난 총 3513만명으로 추산했다.

전국의 도로, 철도역, 버스터미널이 붐비는 것을 보고 늘 ‘추석=귀성’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귀성 행렬에 합류하는 이들은 국민의 절반도 안 된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1889년부터 주기적으로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를 상대로 한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결과를 보면 1989년 34.2%, 1990년 32.7%, 1991년 30.7%만이 1박 이상 고향 방문 계획이 있다고 답했었다.

2003년까지도 귀향 계획이 있는 이들의 비율은 30%대였다.

KTX 개통과 잇따른 고속도로 확충 등으로 귀성객 수송 용량이 커진 2000년대 후반 이후에도 귀향을 계획하는 이들의 비율은 40%대 초반에 머물렀다.

한국갤럽의 2006년 조사에서는 귀성객 비율이 43.5%였으며, 시장조사업체 트렌드모니터와 이지서베이의 2011년 조사에서도 추석 연휴에 지방으로 이동하겠다는 국민은 40.3%에 불과했다.

10명 중 4명이 귀성을 하면 나머지 인구는 무엇을 할까.

집이나 가까운 친척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아직도 가장 많지만,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휴가를 즐기거나 ‘자기 투자’의 기회를 가지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 핵가족화에 따른 신풍속도

명절을 이용한 해외여행이 늘고 있는 현상은 ‘연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직장과 생활 환경이 다르다 보니 가족 또는 친구들 간에 휴가 기간을 맞추기 어렵지만, 연휴는 모두가 쉬기 때문에 함께 갈 수 있는 해외여행 수요가 오히려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 핵가족화로 인해 명절 제사를 생략하는 가정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다.

명절 풍속이 핵가족화 시대에 들면서 스스로 바뀌어 가고 있다. 4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명절 연휴가 ‘노는 날’이 3일이나 이어져 있는 황금 연휴로 인식되고 있다.

명절 연휴를 보내는 방식도 소득 수준과 직장 수준에 따라 양극화가 뚜렷하다. ‘신이 내린 직장’에 다니는 고소득 층에서는 명절도 화려하게 보낸다. 날짜가 길어지면 해외여행을 하며 휴가를 즐긴다.

그렇지 못한 층은 웬만하면 ‘방콕’ 행이다. 기껏해야 자녀들과 영화 한편 보는 정도다.

고향을 찾는 귀성객, 즉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절을 쇠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전과 같지는 않다. 부모가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역 귀성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고향을 지켜오다 명절에 오히려 고향을 떠나는 이상한 현상이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한다는 면에서 명절의 풍속을 지키는 사례로 봐야 한다.

명절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어른들께 인사 드리고 손님이 찾아오면 준비한 음식을 내오던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

서로가 번거롭고, 또 그냥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라고 해봐야 할아버지, 할머니, 자식 손자 3대가 모이는 예전의 대가족 개념과는 다르다. 부모, 자식 2대가 모이는 핵가족이다.

충북대 강희경 교수(사회학과)는 “명절 풍속이 바뀌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며 “그렇더라도 명절에 담긴 조상의 얼과 문화를 새겨보는 자세는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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