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적 인재 양성, 기초를 탄탄히 하면 된다.
융합적 인재 양성, 기초를 탄탄히 하면 된다.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9.0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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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전 세계에서 고교교육제도가 문과와 이과로 구분된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문·이과 구분의 잔재를 우리가 지금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이과의 여부를 결정하는 고등학교 1, 2학년은 아직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나이다. 어린 시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건 너무 잔인하다. 융합의 시대를 표방하는 요즈음 문·이과 구분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일본은 지금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문·이과를 구분하는 교육제도로 말미암아 융합적 사유나 연구가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서 지식 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융합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은 창의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요즘의 경제 체제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여 년 전 철학-언어학-공학-의학이 아우러진 융합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훈민정음의 가치와 의미를 의학-공학-과학을 통해 입증하고 거기에서 도출된 결과를 언어학-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독자적인 철학 체계 구축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였다. 아이디어가 높이 평가되었고, 당시의 융합 연구로서는 획기적인 액수인 13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연구를 진행하였다.

융합연구가 희귀하던 시절이라 주변에서는 우리 연구과정을 회의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실제로 연구 진행 과정에서 융합연구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실감하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분야와 전공이 다른 연구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만 가지고 있을 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문제를 풀어가는 절차가 완전히 달랐다. 전공이 다른 연구자들 사이의 대화는 마치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았다. 지금도 대학에서 전공 사이의 벽은 여전히 높다.

최근 교육부는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여 고등학교부터 융합적 사유 능력을 함양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연구와 교육 환경을 볼 때, 융합적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계획은 결코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학문 분화 이전으로 돌아가 생각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근대 사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데까르트와 베이컨은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문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분야와 전공에 상관없이 연구와 탐구에 공통으로 요구되는 사유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곧 전공이 분화되기 이전의 기초적 사유방식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의 글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 있다. 전공 분화 이전의 기초적인 사유능력 함양 방식을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이들의 사유방식은 과학은 물론이고 문학이나 역사, 철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되어 서양의 근대 문명을 꽃피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곧 기초적인 사유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연 것이다. 이는 기초를 탄탄히 하면 융합적 사유 능력은 자동적으로 함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융합적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면 기초적인 사유 능력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고교의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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