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친구
노인과 친구
  • 엄갑도 <전 충청북도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3.09.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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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엄갑도 <전 충청북도중앙도서관장>

아침 테니스를 즐기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저 임창렬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오늘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임창렬씨는 올해 87세인 어르신이다. 충북노인복지회관에서 일본어와 하모니카를 함께 배우고 있는, 말하자면 동기생이다. 며칠 전 내가 쓴 「아름다운 황혼」수필집을 드렸더니 그 책을 열심히 다 읽고서 매우 감명 깊게,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점심 한 번 꼭 대접해야겠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을 때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이렇게 전화를 주셨다. 점심값은 내가 낼 요량으로 하고, “네, 그러시죠.”하고 약속했다.

약속한 시내 모 음식점에서 만난 우리는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의 인생 드라마였다. 간략하게 약술해 본다면, 그는 평안남도 용강 사람으로 진남포공업전문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1.4후퇴 때 가족과 헤어져 월남을 감행했다고 한다. 당시 24살의 청년이었다고 한다. 추위 속에서 월남할 때의 그 고생과 남한에 와서 살아남기 위하여 겪은 고생은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나 착실하게 버틴 덕으로 사업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결혼하여 2남1여의 가장으로서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수원에서 자동차학원을 운영했고, 한 때는 경기도지정운전교습학원도 운영했다고 한다. 또 경기도 배구협회장 등 사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고희를 넘기면서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73세 때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 가족과 함께 청주로 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와 사별하고, 이렇게 14년을 청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많은 친구들을 청주에서 사귀면서 그런대로 외롭지 않게 살아왔다고 한다. 원래 탁구 배구 검도(3단) 수영 등 모든 운동에 취미를 가진 그는 긍정적이고 붙임성 있는 활발한 성품으로 잘 적응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특히 수영은 젊었을 때 경기도 대표 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했을 만큼 뛰어났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 1Km(50m 수영코스 왕복 10바퀴)를 수영한다고 한다. 도저히 87세의 노인이라 믿을 수 없으리만큼 지금도 건장하시다.

그는 마지막으로 참으로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늙어가는 노인에게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친구가 제일입니다.‘고독 병’과 ‘무료함 병’이라는 병이 있는데 매우 지독합니다. 이 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가 바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면서 살았는데, 그 중에서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 6명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 친구는 평안남도 진남포공업전문학교 동기동창입니다. 월남해서 고생하면서 만난 우리들의 그 회포가 어떠했겠습니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서 만나 한 달 동안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고 헤어집니다. 다시 다음 달 만나게 되는 이 날이 가장 기다려지는 행복한 날입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을 끝냈다.

한 사람의 삶이 성공적이었는지를 알려면,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가 2명 이상이면 족하다고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87세의 이 어르신은 6명을 꼽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그저 부끄럽다는 생각만 든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까지 살아온 삶을 잘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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