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9.0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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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이상국

면(面)에서 심은 코스모스 길로
젊은 며느리들이 꽁지머리를 하고 달리기를 한다
그들이 지나가면 그리운 냄새가 난다
마가목 붉은 열매들이 길을 막아서 보지만
세월은 그 키를 넘어간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여름이 또 가고 나니까
민박집 간판처럼 허술하게
떠내려가다 걸린 나무등걸처럼 우두커니
그냥 있었다
이 촌구석에서
이 좋은 가을에
나는 정말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여러 번 일러줘도
나무들은 물 버리느라 바쁘고
동네 개들도 본 체 만 체다
저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
나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소주 같은 햇빛을 사발떼기로 마시며
코스모스 길을 어슬렁거린다


※ 흐르는 시간을 누가 멈출 수 있으랴. 젊음은 달리기하듯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새 가을 자리에 서 있는 인생은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세월을 넘는다. 숱한 다짐 속에 다져온 시간이지만 여전히 허술한 나로 남아있어 더 쓸쓸한 가을이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치기를 부려보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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