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딸
며느리와 딸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3.08.29 1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친정어머니가 정형외과에 입원을 했었다. 혼자 집에 계시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셨단다. 밭에 갔다 돌아오신 아버지는 허리를 쓰지 못하고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시고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구급차를 부르고 큰아들에게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소식을 듣고 친정으로 달려간 나는 기가 막혔다. 병원에서는 며칠이라도 입원을 해야 한다고 권유했으나 무슨 고집이신지 그냥 집으로 오셨다고 했다. 화장실 출입도 못하실 정도인데 집으로 오시다니 속이 상했다. 하루만 기다려보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입원을 하자는 말을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다시 친정으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입원시켰던 것이다.

병실에는 환자 셋이 함께 있었다. 모두 허리를 다쳐 입원하신 분들이라 거동이 불편하다. 입원 후 며칠은 나 혼자 어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시지만 아들며느리들은 그들 나름대로 일이 있으니 시간 날 때만 잠깐 들른다. 세 분 중에 나이가 60대 중반인 환자는 딸이 없고 아들이 멀리 살고 있어 병문안을 자주 올 수 없는 형편이고 제일 늦게 입실한 고령의 할머니는 가까이 사는 딸들이 날마다 온다. 며느리는 가끔 오는데 아들은 면회 오는 시간이 나와 맞질 않아서인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침대마다 풍경이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친정어머니의 거동이 조금 편해질 무렵 선배 문우가 점심초대를 했다. 자리를 함께한 다른 선배께서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안부를 묻는다. 시부모님 두 분이 병원에 계시는데 친정어머니까지 입원을 하셨으니 마음이 무겁겠다고 위로를 한다. 말끝에 농담이 따라 붙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며느리들은 시자가 들어가는 것을 모두 싫어한다고 한다. 요즘은 시계도 안차고 다닌단다. 결혼은 해도 시집은 안가는 여자가 많아졌다며 선배는 변해가는 세태를 꼬집는다.

내가 맡고 있는 글쓰기 교실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오십대 초반에서 팔십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참으로 특별한 중년여인이 있다. 그녀는 뻥튀기장사를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다. 며칠 후, 장사에 맞는 중고트럭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다. 시어머니 때문이라고 한다. 일찍 혼자 되셔서 보따리장사로 말로 다하지 못할 고생하며 자식들 키우고 재산도 모으고 혼사도 마쳤는데 아직도 남의 집 품을 팔러 다닌다고 했다. 고향에서 헌집을 빌려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안타까워 같이 살자 간청했으나 고향이 좋다고 안 오신단다. 남편에게 조그만 집이라도 한 채 지어드리자고 졸라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아 이래저래 속이 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궁리 끝에 시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관광도 하면서 뻥튀기장사를 하기로 했단다. 그러면 품팔이도 가지 못할 것이고 덜 고생이 되지 않겠냐며 울먹인다. 장사계획을 시어머니께도 말씀드렸더니 좋다고 하신단다. 그녀의 글 속에는 친정어머니는 없고 항상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 담겨있다. 장사해서 돈이 모아지면 작은집을 하나 지어드릴 거라며 환하게 웃는다.

내가 혼인할 때만 해도 결혼이라는 말보다는 시집을 간다거나 장가를 간다고 했다. 대부분 대가족제도여서 시집에서 함께 생활을 해야 했으니 당연히 시집을 가는 걸로 알고 살았다. 지금은 그 집 사람이 되기 위해 시집을 가는 게 아니란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결혼을 한단다. 시집을 간 게 하니라 결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강요하지 말란다. 그래선지 시집 일 보다는 친정 일에 더 나서는 게 꼴사납다고 일침을 가하는 시어머니들이 주위에 많아졌다. 허나 여자는 나이 불문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시자가 싫어도, 불편한 일이 많아도 말을 하지 못하고 참았던 세대와 용기 있게 할 말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차이뿐이다.

친정어머니는 퇴원해서 집으로 가셨다. 내게는 각기 다른 병원에서 며느리를 기다리는 시부모님이 계시다. 양쪽을 오가려면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그래도 당연하게 간다. 친정과 시집을 저울에 달아보면 시집이 무겁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며느리들도 아직은 그렇게 알고 살아가고 있으니 우려할 일은 아닌 듯싶다.

바람이 서늘해졌다. 산마루에 몸을 누이는 햇살이 힘겹다. 내가 살고 있는 산속동네의 숲은 순식간에 지상의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린다. 밤이다. 달의여신 아르테미가 지배하는 시간.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이 밤하늘 가득한데 나는 친정으로 가는 마음을 잡고 자꾸 서성거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