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 문제, 법대로 풀어야 하나?
국공립대 문제, 법대로 풀어야 하나?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8.2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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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국공립대에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국공립대 졸업생들이 기성회비 납부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성회비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법원이 결정하면 대학은 따라야 한다.

과거 국가가 국공립교육기관의 예산을 충분히 지원할 수 없었던 시절, 기성회비는 학교 운영예산의 일부를 학부모들로부터 받아 충당하기 위해 문교부 훈령에 따라 징수해 왔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기존에 징수했던 기성회비를 반환해야 하고, 앞으로도 기성회비를 받을 수 없다.

국립대학의 경우, 국가 지원 예산과 기성회 예산은 개략 50:50 정도가 된다. 앞으로 대학운영에서 반 정도 예산이 삭감된다고 보면 맞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미 징수한 기성회비를 반환한다고 하면 최대 13조 원의 돈을 토해 내야 한다. 국립대 예산은 당분간 한 푼도 없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향후 기성회비를 징수하지 못하면 기성회 예산으로 고용하고 있는 국공립대 직원들은 전부 밥줄을 잃는다. 이럴 경우, 대학 운영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법원 발 초대형 태풍이 국공립대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서 국립대학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국립대학 졸업생 모두가 소송을 제기한다고 할 때 13조 원의 돈을 정부에서 부담할 수 있을까? 정부의 예산 편성과 집행과정을 놓고 보면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법원은 기성회비 반환 의무는 국가가 아니라 대학이 져야한다고 판결하고 있다. 곧 정부로서는 팔짱 끼고 구경해도 되는 구실이 생긴 셈이다. 공은 고스란히 대학에 넘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이 문제를 풀 재정적 여력이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국공립대 기성회비 문제는 법대로 하면 풀리지 않는다. 차제에 법원 발 국공립대의 위기를 우리나라 고등교육체제를 바꾸는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곧 보다 포괄적인 틀을 바꾸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말이다.

2010년 기준으로 고등교육 기관 중 국공립대학의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곧 사립대학의 비중이 87%에 달한다는 말이다. 고등교육에서 사립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더 나아가 등록금 수준은 국공립대가 사립대의 56%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곧 사립대 등록금이 국립대의 두 배가 된다는 말이다.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주범은 사립대 위주의 고등교육 공급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립대 위주의 고등교육을 국립대학 중심의 고등교육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해 학부모들의 부담을 경감시키자는 말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확립하여 사립대학의 정원을 줄이고 국립대학의 정원을 늘리려면 정부의 재정투자가 필요하다. 재정 문제는 2009년부터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고등교육재정 교부금 법’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풀면 된다. 대학은 대다수의 국민을 교육하는 보통교육기관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고등교육의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정부의 재정 부담 원칙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법안이 제정되면 국공립대는 법원 발 태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중심으로 다시 설 수 있다.

공은 법원에서 국회와 정치권으로 넘어가 있다. 법원 발 국공립대의 위기 앞에서 교육부 장관과 국공립대의 총장들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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