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
  • 엄갑도 <전 충청북도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3.08.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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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엄갑도 <전 충청북도중앙도서관장>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연히 아파트 정자 옆을 지나다 노인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한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한창 젊었을 때 말이야 …” 또 한 노인은 “내가 왕년에 과장으로 있을 때 말이야, ….” 또 다른 한 노인은 “왕년에 사장으로 있을 때 말이야….” 모두들 친한 사이인 모양인데, 웃음소리 높여 가며 왕년에 한 가닥씩 날리던 화려했던 시절을 자랑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파트 숲에서 계절을 만난 매미의 울음소리는 창창한데 젊음을 잃어버린 노인들의 웃음소리는 어딘가 처량하게 들렸다.

황혼의 여정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지난날의 추억 속에 머물면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고들 한다. 나 역시 빠르게 달려가는 세월 속에 나이는 늘어나는데 늘 되풀이되는 일과 속에서 평범한 세월을 보내면서 추억에 잠길 때가 많다.

살아온 세월의 편린들이 머릿속에 어른거리고 잃어버렸던 아련한 추억들이 가슴속으로 물결쳐 옴을 느끼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많다. 추억이란 단순히 영원히 정지되어 있는 지나간 과거사일 뿐 그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씩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보냈음에 감사하면서도 이룬 것 없이 어물어물 흘러가는 세월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영국의 시인, 비평가였던 사무엘 존슨이 말한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란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 말의 의미는 어물어물하면서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흘러가는 세월을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면서 알차게 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나는 황혼의 여생을 잘 보내고 있는가?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가?” 라는 부질없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자주 던져보게 된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스러움 뿐이다. 자신이 속절없이 늙어간다고 생각하면 짜증부터 날 때도 있다. 물론 이 짜증 속에는 젊은 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도 있겠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무상함과 자신의 무기력에 대한 자괴감에 억눌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어쨌거나 때때로 세월에 대한 무상함과 자신의 무기력에 대하여 변화의 도전도 시도해 보지만 얼마가지 않아 자신의 무력함만 또 한번 인식하고 물러나곤 한다.

어느 날 문득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유명한 단편 중에 「세 가지 질문」이란 글이 생각났다. 이 글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의 공통점은 "지금"이 아닌가. 지금 현재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여 충실히 하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 아니 이 사회를 위하여 보람되고 유익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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