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식구들의 밥그릇을 차지 않는 법이다.
가장은 식구들의 밥그릇을 차지 않는 법이다.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8.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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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우리 선조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자손들에게 기본예절을 가르쳐 왔다.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어른 공경하는 법을 가르쳤고,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겠다고 달려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욕구를 억제하고 더불어 사는 방식을 가르쳐 왔다. 이 외에도 밥상에서 지켜야 할 예절은 수없이 많았고, 식사 예절 교육은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엄격한 밥상머리 교육이라도 한 가지 철칙은 지켰다. 곧 밥을 먹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자식들의 밥그릇을 차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립대 직원들의 연금을 등록금으로 대납한 사건 때문에 교육부의 고위공직자들이 국공립대학에 근무하며 받는 기성회 수당이 문제가 되었다. 국무회의석상에서 이 같은 지적을 받은 교육부 장관은 국공립 대학의 장들을 모아서 아예 전체 교직원들이 기성회비에서 받는 수당을 없애겠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말로는 협조지만 협조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으니 강압에 가깝다. 교육부의 수장이 식구들의 밥그릇을 차는 일에 앞장섰고, 국공립대 총장들은 침묵으로 동참한 것이다.

간단한 계산 몇 가지를 해보자.

첫째, 국공립대 직원들이 기성회비에서 받는 수당은 연간 560억 원 정도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의 직원이 있다고 할 때, 평균 근무 년 수를 계산하면 20년 정도가 되며, 이럴 경우 20년 동안 국공립대 직원들이 받는 기성회비 수당의 총액은 1조 1120억 원 정도가 된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행·재정적 제재를 가할 경우 대학의 손실액은 얼마나 될까 1조가 넘는 돈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교육부의 가장이라 할 수 있는 교육부장관과 대학의 장들이 푼돈을 빌미로 식구들에게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하라고 하는 건 이해가 잘 안 간다.

둘째, 2012년 국공립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370만 원 수준이고 사립대학 평균은 660만 원 정도이다. 국공립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이미 사립대 등록금의 56% 정도밖에 안 된다. 국공립대학의 재학생 수가 48만 명 정도이고, 사립대학 재학생 수는 174만 명 정도이다. 어림잡아 계산하면 국립대 등록금 총액은 1조7760억 원 정도이고 사립대는 11조4800억 정도가 된다.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록금 문제는 사립대가 훨씬 심각하다.

교육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가지고 한두가지 간단한 계산을 해보면 국공립대 교직원의 밥그릇을 차는 정책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삼척동자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계산을 놓고 보면 교육부는 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 등록금 문제는 국공립대 교직원들의 수당을 빼앗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육환경이나 여건이 우수하지만 등록금이 싼 지역 국립대의 정원을 늘리고 열악한 사립대의 정원을 줄이면 반값 등록금 문제는 쉽게 풀린다.

수당지급의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교육부의 주장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월급을 깎아 놓고 보자는 것은 수장의 태도로는 부적합하다. 법률적 근거가 없다면 근거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국공립대 총장들도 교육부에 이점을 역설해야 했다. 식구들의 밥그릇을 차는 가장은 존경받을 수 없다.

새 정부 들어 교육부는 지난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향후 교육부의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 첨부하고자 한다. 지금이라도 큰 틀에서 정책의 방향을 다시 잡고, 식구들의 수당을 보장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을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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