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광
여름 풍광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8.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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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각 계절마다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물이나 정경이 있게 마련이다. 무더위와 비로 상징되는 여름의 모습은 어떠할까? 바람을 잘 통하게 하기 위해 문을 열고 대신 치는 발이나, 바름을 일으키기 위해 부치는 부채, 시원한 화채 등등 여름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송(宋)의 시인 소순흠(蘇舜欽)은 여름에만 보이는 풍광들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 한여름에(夏中)

院僻簾深晝景虛(원벽염심주영허)

집안 깊은 구석 발 깊게 드리우니 낮 그림자 텅 비었고

輕風時見動竿烏(경풍시견동간오)

산들 바람 가끔 불어와 검은 댓가지 움직이는 게 보이네

池中綠滿魚留子(지중록만어류자)

연못 속엔 물풀 가득하고 물고기는 알을 낳고

庭下陰多燕引雛(정하음다연인추)

뜰 아래 짙은 그늘에 제비가 새끼들을 데려온다

雨後看兒爭墜果(우후간아쟁추과)

비 온 뒤 아이들을 보니 서로 떨어진 열매를 다투고

天晴同客曝殘書(천청동객폭잔서)

날이 개어 손님과 함께 낡은 책을 햇볕에 말린다

幽棲未免牽塵事(유서미면견진사)

그윽한 곳에 살아도 세상일에 끌리는 일 면하지 못하니

身世相忘在酒壺(신세상망재주호)

이 몸과 세상이 서로 잊는 일은 술 마시는 일에 있구나

 

※ 여름을 대표하는 풍광은 뭐니뭐니해도 그늘이다. 그리고 그늘은 짙고 깊어야 한다. 집안에도 깊은 데가 따로 있는데, 이곳은 언제나 그늘이 들어 있다. 여기에 발을 깊숙이 내린다면, 더위를 피하는 장면으로는 이를 따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산들 바람이 불고 검은 댓가지가 간간히 움직인다. 집안 깊숙한 그늘에서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발을 드리운 채 산들 바람을 맞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시원한가?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는 풍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왕성한 생명 현상 또한 여름만의 풍광이다. 연못 안에 가득한 녹색 물풀, 여기에 알을 낳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뜰아래 짙은 그늘에는 제비가 새끼를 가득 낳아 기르고 있다. 여름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도 여름에만 하는 일들이 있다. 비 오고 난 뒤 떨어진 열매를 서로 주우려고 아이들이 다투는 모습이나, 비가 멈추고 해가 들었을 때, 때 마침 찾아 온 손님과 함께 책을 말리는 선비의 모습 또한 놓쳐서는 안 될 여름 풍광의 하나이다.

이처럼 시인은 외진 곳에 은거하며 여름 풍광을 즐기고 있지만, 세속의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세속을 잊고자 술을 마신다. 속세에 묻혀 살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여름의 풍광들을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여름나기는 충분히 훌륭한데, 여기에 세상 시름 잊게 하는 술 한잔까지 곁들여지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할 것이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 사람이 더위를 피하는 모습이나, 왕성한 생명 현상, 여름을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등 여름의 풍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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