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늦둥이
어머니의 늦둥이
  • 이재성 <수필가>
  • 승인 2013.08.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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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성 <수필가>

어머니가 늦둥이를 보셨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한꺼번에 생겼다. 한달 전에 강아지 두마리를 일주일 간격으로 어머니께 안겨 드린 것이다. 한 녀석은 누렁이고 또 한 녀석은 검둥이라 부른다. 처음 본 느낌 그대로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털 색깔이 누렇다고 누렁이요, 검다고 검둥이다. 농촌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잡견(雜犬)이다. 한 배에서 태어난, 이를테면 자매지간이기도 하다. 생김새마저 눈에 띄는 구석이 없는데다 천방지축 저지레만 해 대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고 잔소리 또한 쉴 새가 없다. 말이 통하지 않고 눈치도 없이 소란스러운 녀석들 때문에 먹통 같았던 집안이 수다스럽고 어수선해졌다.

이 녀석들이 한 식구가 된 후로 어머니는 새벽잠을 편히 한번 잘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날이 새기 무섭게 달려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낑낑거리며 극성을 떠는 통에 모른 척 누워 있을 수가 없단다. 흡사 젖먹이 애기들 칭얼거리듯 한다니 여섯 자식을 키운 모정이 여전하게 발동하는 것 아닌가 싶다. 틈나는 대로 신발을 물어 나르고, 흙 묻은 채로 툇마루에서 뒹굴고, 옆집 텃밭에 멀칭비닐 찢어 놓고, 서로 엉겨 붙어 죽기살기로 쌈질하고L. 놀부 심술이 따로 없다.

한달 전, 누렁이가 혼자 처음 왔을 때 며칠간을 곡기를 끊은 적이 있었다. 어미 품을 떠난 세상이 얼마나 청천벽력같이 무섭고 두려웠겠는가. 어머니는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 가 보면 없던 우유팩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또 어떤 날은 고급 빵 봉지가 눈에 띄기도 했다. 알고 보니 강아지 몫이었다. 삼겹살을 일삼아 구워 잘게 찢어 입에 넣어 주기도하고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애를 태울 때면 입을 벌리고 수저로 떠 먹이는가 하면 별별 정성을 다 들인 모양이다. 괜한 짓을 해서 노모를 불편하게 해 드리는 것 아닌가 염려가 되었다.

어머니는 열 식구가 넘는 대가족이 북적거리는 집안의 맏며느리였다. 그 뒷바라지로 젊은 호시절을 정신 없이 보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팔순을 훨씬 넘기셨다. 많던 가족들은 제각기 가정을 이루어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개울가 외딴집에서 기력이 쇠한 몸으로 혼자 외롭고 쓸쓸하다. 긴 세월을 같이 늙어버린 노간주나무 울타리 그늘에 겨우 의지한 채 먼 강산만 바라보는 눈빛은 초점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넋이 나간 듯 하다. 오며 가며 자동차의 경적을 울리는 것으로 인사를 드릴 때면 고사리 같이 쪼그라든 손을 조용하게 흔들며 슬픈 미소를 보낸다.

어머니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올 봄부터 문득문득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이웃과 오며 가며 의사 소통을 하고 적당한 소일거리가 있어 그 일로 보람을 찾고 즐거움이 있어야 사람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진종일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고 티끌 하나 소일거리가 없으니 그야말로 고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사를 짓네 하며 내가 자주 들락거리기는 하나 살갑지 못한 성격 탓에 오고 간다는 인사만 끔뻑 드릴뿐이니 있으나 마나 한 자식이 아니었을까.

농장 가까운 곳에 어머니가 계시지만 처음에는 일을 하러 갈 때마다 그날 먹거리를 알뜰하게 챙겨 가지고 다녔다. 먹는 물이며 라면, 버너, 냉커피, 간식용 미숫가루, 점심에 먹을 밥까지 바리바리 싣고 다니며 일을 했었다. 불편하신 몸에 성가시게 해드리는 것 같아 잘한다고 한 것이다.

과연 잘한 짓이었을까 어쩌다 물 한 모금이라도 주십사 청하면 좋아하시는 것을, 허기가 밀려 와 찬밥이라도 한 그릇 찾노라면 얼굴에선 금방 생기가 넘치시는 것을L 찬밥을 물에 말고 된장에 풋고추 하나 꾹 찍어 오늘 점심도 모자(母子)가 겸상하여 한 그릇 뚝딱 해 치웠다. 아마 혼자 계셨으면 점심은 또 굶으셨을지도 모른다.“너는 어려서부터 먹는 것은 참 잘 먹었어, 아무거나 먹음직스럽게 먹었지.” 어머니의 옛모습이 이제 조금 보이는 듯 하다. 모성애를 자극 받았을 때 모든 어머니들은 초인간적 힘이 생기는 모양이다. 무뎌진 모성애를 자극시켜 보라. 모든 어머니들은 행복해 할 것이다.

누렁이와 검둥이는 한 달새 어느덧 중 강아지가 되었다.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쭉쭉 늘어 난 듯 하다. 못 생기고 맹추같이 자유분방한 늦둥이 두 녀석들 뒤치다꺼리에 연세가 여든다섯 된 어머니는 오늘도 불편한 몸으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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