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의 엉뚱한 연상
‘설국열차’의 엉뚱한 연상
  • 김선호 <충북도 안전총괄과장> 
  • 승인 2013.08.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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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선호 <충북도 안전총괄과장> 

“어때? 영화!” 복잡한 출구를 나오며 딸에게 한마디 던졌습니다. “음, 뭐 재미있네요. 메시지도 좀 있는 거 같고, 스케일도 크고….” 지난 일요일 아침에 요즘 뜨는 영화 ‘설국열차’를 봤습니다. 지구온난화 대책이 어그러져 빙하기를 부르고 열차 내부만이 유일한 생존지역입니다. 꼬리 칸에서 머리 칸까지 다양한 계급사회가 형성되죠. 짐승처럼 살아야하는 사람도 있고 호사를 만끽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계층 간의 갈등을 묘사하고 생존권을 되찾으려 벌이는 액션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난 말이야, 좀 생뚱맞지만 나라 잃은 설움 같은 게 느껴지던데, 뭐랄까…” 채 잇기도 전에 딸이 말을 끊네요. “뭐야, 아빠! 붙일 걸 끌어다 붙여야지” 아마도 딸은 속으로 ‘아빠 더위 먹었어요?’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영화를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촬영했다더니 역시 다르다. 그렇지?’ 뭐 이런 단평을 은근히 기다렸을지도 모르죠. 억지스러울지 모르지만 나는 꼬리 칸 사람들의 비애가 조국을 잃어버린 망국의 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일제 강점기나 6.25를 겪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간접교육을 통해서라도 어느 정도 안보의식을 비축해둔 덕이겠지요. 70년대 브라운관에 자주 등장하던 보트피플의 광경들도 아마 한몫 했을 것입니다. 가까이는 연평도 포격사건이나 천안함 피격사건도 있네요. 며칠 전에는 영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공장을 두 배로 증축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뉴스까지 나왔습니다.

비록 삶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블루길과 배스를 수입하여 강에 풀어놓고 토종이 사라진다며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습니까. 황소개구리를 소탕하자며 공공기관에서는 개구리 시식행사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맛이 참 좋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을 찡그리며 억지로 삼키는 어느 기관장의 웃지못할 장면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뿐입니까, 이런저런 외래종 식물들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피켓시위를 하는 환경론자들도 자주 눈에 띕니다. 사람이건 동물이나 식물이건 제 땅을 빼앗기면 여지없이 목숨을 내어주거나 집시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설마 전쟁이야 나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이런저런 남북의 상황을 보면서 외국에서는 긴장하고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정녕 국내에서는 미동도 없습니다. 뭔가 심상찮다고, 마음을 놓으면 곤란하다고 역설을 하면, 으레 무슨 정치적 술수가 깔린 건 아닐까 하고 의심부터 합니다. 늘 양분되는 논리에서 어떤 게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보에 관한한 우리는 절대로 간과해선 아니 됩니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오는 8월 19~22까지 2013년도 을지연습을 실시합니다. 을지연습은 전시에 대비하여 군경과 정부, 그리고 국민이 각종 사태를 가정하고 이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도상훈련입니다.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생활밀착형 주민참여 훈련도 실시합니다. 단양군 매포천 일원에서는 동원업체 유류저장고 피폭에 따른 남한강 수질오염 방제훈련을 군경과 주민합동으로 실시합니다. 또한 8월 21에는 민방공훈련을, 8월 22에는 에너지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전국 일제 소등훈련도 이어집니다.

을지연습이 ‘그들만의 잔치’라는 주민의 평가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해의 을지연습은 정녕 도민과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고 싶습니다. 을지연습 기간만이라도 안보의식을 새롭게 다져보고, 또 을지연습 현장에도 많은 도민이 참관하면 좋겠습니다. 주민이동이 통제되는 민방공훈련에도, 수질오염 방제훈련에도 스스로 참여하여 전시 대응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되길 정녕 소망합니다. 딸이 말을 끊는 바람에 못했던 ‘설국열차’의 관람소감과 연상을 이렇게 공개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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