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
좌우명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8.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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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람마다 좌우명이 있다. 앞에 붙여놓고 아침저녁으로 보는 글을 말한다. 주로 자기를 경계하고 독려하는 문구를 붙여놓는다. 학생들이 붙여놓은 것을 보면 재밌다. ‘오늘 자면 내일 추녀, 오늘 깨면 내일 미녀!’ 고전이나 명언에서 뽑아내기도 한다.

사실 좌우명은 왼쪽 오른쪽을 말하는 ‘좌우명’(左右銘)이 아니라 자리 오른쪽을 뜻하는 ‘좌우명’(座右銘)이다. 한나라 때 최원(崔援)이 그 주인공으로 앉은 자리 오른쪽에 글을 적어놓아 그렇게 부른다.

좌우명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송나라 때 장재(張載: 1020-77)의 ‘서명’(西銘)이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때, 그의 글도 서쪽 곧 오른쪽에 있었다.

장재는 서재의 동쪽과 서쪽에 글을 써놓고 있었는데 동쪽에 붙어있었던 ‘동명’(東銘)은 유명하지 않다. 그는 본디 왼편 동쪽 글을 ‘폄우’(貶愚), 오른편 서쪽 글을 ‘정완’(訂頑)이라고 불렀다. 폄우는 ‘둔함을 바로잡는다’는 뜻이고, 정완은 ‘어리석음을 물리친다’는 뜻인데, 당시 정이가 그냥 동서로 하라고 해서 동명, 서명으로 남게 되었다. 정이의 제자인 주희(朱熹) 곧 주자가 이 서명에 해설을 달면서 이후 많은 유학자들이 나름의 해석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황도 ‘서명고증강의’(西銘考證講義)라는 글을 남겼으니 그 영향력은 대단했던 셈이다. 그는 이를 임금에게 진강하기도 했다. 이후 송시열(宋時烈)도 ‘서명의 주제는 어짐(仁)이다. 동서명이 된 까닭은 정이가 폄우, 정완이라고 하면 싸움거리가 되니 그냥 동서로 하라고 했다’(실록 숙종6년)면서 서명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서명의 내용인데, 송시열이 말했듯이, 사해동포와 물아일체의 정신(民吾同胞, 物吾與也)을 바탕으로 한 인간애가 그 핵심내용이었다. ‘살아서 제대로 살고, 죽어서는 편안하리라’(存吾順事, 沒吾寧也)는 말로 그 글은 마치고 있다.

나는 한 동안 독립기념관에서 구한 삼균(三均)주의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글을 걸어놓고 있었다. 붙일 자리가 북쪽밖에 없어 북명이었던 셈이다.

‘천하의 교육, 경제, 정치를 균등히 하라.’(均天下之智富權.)

내용도 좋았지만, 그의 필묵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내 판단에는 그가 임시정부요인 가운데 가장 유려한 필체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한다. 사상도 좌우를 통틀어 그만한 주체적인 사상가는 드물다. 특히 교육의 권리를 먼저 내세운 것은 정치와 경제의 밑바탕에 바로 교육의 문제가 깔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서, 나같이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 이념이면 좌우를 넘나들어, 중국혁명의 지도자인 쑨원의 삼민(三民)주의처럼 자유주의자나 공산주의자에게 모두 존경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최근에는 도산서원에서 구한 이황의 필묵을 서쪽을 향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있다. 세 글자씩 아래로 쓴 모두 여섯 자의 목판 탁본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고, 남을 섬기지 않음이 없어라.’

하나는 개인윤리고, 하나는 사회윤리다. 그런데 이글은 이렇게 쓰였다. ‘母自欺, 母不敬.’ 어찌된 일인지 ‘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毋: 무자기, 무불경)라고 써야 하는데, 퇴계 선생은 그냥 어미 ‘모’(母)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오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어머니는 스스로 속이시네, 어머니는 아무도 섬기지 않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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