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붙잡고 싶었던 연쇄살인범의 분투기
기억을 붙잡고 싶었던 연쇄살인범의 분투기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3.08.0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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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새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범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소설

퍼즐조각 맞추듯 풀어내는 필력

캐릭터·독특한 전개 등 '흥미진진'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7쪽)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자살 안내인’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한 소설가 김영하씨(45)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들고 돌아왔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1년반 만에 펴낸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놈은 혹시 은희를 노리고 있는 것일까.’(25쪽)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연쇄살인범 앞에 아가씨들만 노리는 새로운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살인자의 기억법(176쪽, 1만원, 문학동네)’은 자신의 딸을 노리는 연쇄살인범,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안 형사’, 그리고 빠르게 사라져가는 기억들과 맞서는 노인의 분투기다.

‘내 생애 마지막 할 일이 정해졌다. 박주태를 죽이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70쪽)

캐릭터뿐 아니라 구조도 독특하다. 작가는 숱한 살인에도 한 번도 잡히지 않고 늙어온 연쇄살인범 ‘김병수’의 독백으로 소설을 끌어간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한 노인의 독백은 길어도 2쪽을 넘기지 않아 독자들이 혼란스러운 결말에 닿는 시간도 짧다. 작가는 짧은 문장, 짧은 단락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퍼즐 조각 맞추듯 풀어내며 필력을 과시한다.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143쪽)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을 구상한 것은 10년 전이다. ‘검은 꽃’‘빛의 제국’‘퀴즈쇼’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쓰는 동안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 살인범’ 이야기를 키워왔다. 그리고 2013년 초 이야기가 “튀어올랐다.”

김씨는 작품의 말미에 “이번 소설은 유난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하루에 한 두 문장씩밖에는 쓰지 못한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꽤나 답답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주인공의 페이스였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는데 문득 어떤 깨달음이 왔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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