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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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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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간의 학교에서
오 희 진  <환경과 생명 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외계의 어떤 존재를 믿고 접촉(콘택트)하려는 과학자가 있다. 그는 세계의 주목 속에 외계와 접촉을 하기 위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 우주선은 발사되고 마침내 그는 놀라운 우주 접촉에 성공한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발사된 지 단 몇 초 만에 우주선이 바다에 떨어지고 만 것으로 관찰된다. 결국 그가 우주에서 경험한 18시간의 모든 것은 단지 그만의 것이 되고 그는 청문회에 서게 된다. 다시 자신의 연구지로 돌아온 그는 현장학습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말한다.

"우주는 이제껏 그 누가 꿈꾼 것보다 크다.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산다는 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거야, 그렇지" (영화 콘택트에서)

8월 중순에 단재 선생의 꼿꼿한 혼을 기리는 귀래리 자연체험마을에서 청소년 환경캠프를 열었다. 그 즈음의 반교육적, 반인권적 사건들에 실망하면서도 교육이란 무엇인가 되물어 답을 찾는 호기이기도 했다.

30명의 중·고생들은 처음 참여한 듯 기대는 부풀었지만, 폭염은 곧 그것마저 꺾어버릴 기세였다. 그 바람에 숲에서 자연과 접촉하는 숲 체험활동을 하며 우리가 빠져나온 도시는 지금 어떨까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

거기 도시의 학교는 늘 그렇듯이 방학 중임에도 대부분이 보충학습()에 열심일 것이다. 여기 자연과 접촉하는 일과는 달리 거기는 문제풀이에 매달려 다른 세상이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삭제당하고 있다.

그것은 황토 염색과 나뭇가지 곤충 만들기를 번갈아 할 때에도 그랬다. 여기 학생들이 더위에도 점점 자연과 접촉하는 일에 신이 나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을 때에도 거기는 차곡차곡 쌓이는 점수의 성채에 오르고자 한 순간이 지나고 있겠지.

그것은 간식거리로 옥수수를 따는 법을 배우고 고추 등 다른 농작물과 접촉할 때에도 그랬다. 지독한 더위가 산그늘에 밀려 선선함을 더 빨리 접촉할 수 있게 되고 작은 계곡 물에 땀내를 씻으며 풀벌레 소리에 가만히 저녁 어스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자 그 때에도 똑 같았다.

여기 자연이 모든 생육된 것의 희생과 나눔을 푸르게 펼쳐 보여주고 하루의 수고와 마침의 경계마저 빛의 너름으로 우리 안에 넘나들자 저절로 일과 놀이가 분열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밤이 되고 하늘은 여름별자리를 이내 펼쳤지만 별에 이르는 우리의 소망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도 마당에 피운 모깃불에서 오르는 연기로 구름 낀 하늘의 은하수를 대신하자 자연은 선뜻 별이 되어 그 접선을 모두에게 점지하였다. 저 별은 나의 별. 여기는 실로 억겁을 두고 매일처럼 일어나는 천체의 행사(celestial event)가 생명에 교신하는 '우주와 더불어 삶'을 배우는 장소였다.

다시 아침이 되고 사람의 살림집, 한옥도 요모조모 보고 익히고 평생 마을을 지켜온 할아버지에게서 짚으로 새끼를 잇는 법과 다른 짚공예도 배웠다. 여기는 그대로 일마다 삶이 전수되는 원초적 인간의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그것이 성적 경쟁에서의 짧은 일탈인 반면 학생 자신에게는 놀라운 성장의 며칠이었음을 듣는다. 그래. 사람은 그 누구보다 꿈을 꾸는 존재이다. 이 넓은 세계에서 시험 경쟁만을 다그치는 일은 엄청난 교육의 낭비일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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