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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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 승인 2013.08.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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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영양이 살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는 국가상징 동물이기도 하다. 1995년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흑인과 백인의 화합의 상징이 된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대표팀의 별칭도 ‘스프링복스’(Springboks)였다고 한다. 건기에는 100여 마리 이하의 소규모로 생활하다가 풀을 찾아 이동을 하게 되면 수 천 수만 마리로 무리를 이룬다. ‘스프링복’이란 이름대로 4m까지 점프할 수 있고 시속 96km로 달릴 수 있다. 약 25만 마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미비아(Namibia) 지역에 광범위하게 서식하고 있다.

평상시 소규모일 때는 다른 양들처럼 떼를 지어 다니며 풀을 뜯어 먹지만 그 수가 늘어나 큰 무리를 이루면 이상 행동을 하게 되는데 때로는 큰 비극이 벌어진다. 큰 무리의 앞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뜯어 먹어버리면 뒤쪽에 있은 양들은 먹을 풀이 거의 없게 되므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 풀을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뒤 쪽에 있는 양들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맨 앞에 있던 양들도 뒤질세라 뛰기 시작한다. 뒤쪽의 양들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오므로 앞쪽은 선두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 속도를 내어 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 천, 수 만 마리에 이르는 스프링복들은 풀을 뜯을 새도 없이, 쉴 틈도 없이,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간다. 왜 뛰는지도 모르는 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뛰는 것이다. 그러다가 절벽이나 강에 이르게 되면 참사가 일어난다.

앞에 절벽과 강이 있어도 멈추어 설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도 아무것도 모른 채 뒤쪽에서 달려오는 스프링복들에 밀려 절벽으로 강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수천 마리가 순식간에 몰살을 당하기도 한다. 이것이 분명한 목적도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다 끝내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스프링복의 비극이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고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두려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더욱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그들 다수의 무리가 달려가는 곳이 성공과 안정을 보장해 주는 기름진 땅이라면 더 이상의 축복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달려간 곳이 안타깝게도 낭떠러지 끝이라면, 그리하여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무리와 함께 추락해 버리고 만다면 우리의 인생은 헛되다.

이러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려면 잠시 멈추어 서서 나의 삶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돌아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지 않고 유행과 세태만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참 기쁨을 얻지 못한다.

휴가철이다. 긴 휴식의 시간을 유흥과 쾌락으로 보내는 세태가 아쉽다. 물론 가족들과 이웃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한 번 쯤은 자신을 돌아보며 육신과 영혼이 아무런 집착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휴가를 마치면 더 피곤하고 더 많은 걱정과 근심을 안고 오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남들을 좇아가는 휴가가 아니라 자신 만의 휴식을 취하며 성찰할 수 있는 휴가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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