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의 지혜
세상살이의 지혜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8.0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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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은 태어난 이상 나름의 생각대로 살아 나가야 한다.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고, 인간 세상의 질서를 추구하는 삶도 하나의 인생이며, 세속을 떠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천수를 누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어느 것이 옳다고 정의할 수 없는 게 세상살이인 것이다. 크게 보면 현실에 대한 거리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현실참여형과 자연순응형으로 나뉘겠지만, 이 둘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처한 상황이라든가 나이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기도 하는데, 현실적으로 실의(失意)에 빠지거나 나이가 들면, 자연순응형으로 옮겨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唐) 초기의 은사(隱士)였던 왕적(王績)은 세상살이의 두 모습을 비교적으로 보여준다.

◈ 증정처사(贈程處士)

百年長擾擾(백년장요요) : 인생백년이 오래도록 어지럽고 불안하여도

萬事悉悠悠(만사실유유) : 세상일은 다 아득히 흘러가는구나

日光隨意落(일광수의락) : 햇빛은 뜻에 따라 지고

河水任意流(하수임의류) : 강물은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구나

禮樂囚姬旦(예악수희단) : 예악은 주공 단을 가두어 살게하고

詩書縛孔丘(시서박공구) : 시서는 공자를 속박하며 살게했네

不如高枕上(불여고침상) : 높은 베개 베고 누워 은거하며

時取醉消愁(시취취소수) : 늘 취하여 근심을 잊는 것만 못하리

 

※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다. 길다면 길겠지만, 자연의 긴 흐름에 비추어 보면 결코 길지 않다. 이렇듯 짧은 기간임에도 인생은 백년 내내 불안하기만 하다. 이에 비해 세상만사는 모두 막힘없이 흘러 갈 뿐이다. 시인의 눈에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만물의 영장임을 뽐내는 사람이 알고 보면, 가장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이다. 해가 지고, 강물이 흐르는 것은 인위적 조작이 아니다. 누구의 뜻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의 뜻은 아니다. 수의(隨意)라든가 임의(任意)는 이런 의미이다.

이에 비해 사람이 만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 예악(禮樂)이나 시서(詩書), 이것들을 만든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는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거나, 속박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시인이라고 해서 정답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아무런 속박 없이 마음 편히 은거 생활을 하며, 늘 술로 근심을 풀며 사는 것이, 인간 최고의 출세인 주공(周公)이나 공자(孔子) 같은 삶보다 낫다고 시인은 설파한다.

인생은 선택이지만, 또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내공이 높은 은자(隱者)라 할지라도, 현실적 제약을 모두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게 세상살이이지만, 나름의 지혜는 분명히 있다. 욕심을 줄이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갈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다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길 때만이, 그 지혜는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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