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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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3.08.0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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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뜨겁게 타오르는 한낮의 열기에 아스팔트 위를 요란스럽게 달리는 자동차들마저 지쳐 보인다. 길 가던 꼬마 아이가 실수로 떨어트린 사탕이 금방이라도 끈적이며 녹아 버릴 것 같다. 그러다 하루쯤 내리는 장맛비에 아끼는 가죽 구두가 다 젖는다며 불편하다고 이래서 여름은 정말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동네 카페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빗줄기 소리에 취해 커피 향에 취해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는 여름이 좋은 사람도 있다.

한여름의 열기가 제아무리 뜨겁다고 해 봤자 폼페이를 덮친 화산의 열기만큼 뜨거웠을까. 이탈리아를 가는 어느 날, 나폴리에 들러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폼페이. 라떼 한 잔과 함께 로버트 해리스의 저서‘폼페이’(박아람 옮김·랜덤하우스·2007)를 건넨 카페 사장님의 손길에 장맛비 소리도 카페를 울리던 음악 소리도 내 귓가에 다시는 맴돌지 않았다.

한순간에 몰입해 버린 소설책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사실적인 묘사에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한 현장감과 사건의 전개 속도에 심장 뛰는 긴박함과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인간 내면과 한계 그리고 자연의 숭고함에 읽는 내내 한 글자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는 케임브리지 역사학과 출신이자 영국에서 ‘올해의 칼럼니스트’에 선정되었던 작가의 탄탄한 경력에서 나온 힘이었을 것이다. 그를 통해 만난 폼페이 최후의 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경고와 인간 본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위대한 자연은 플리니우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비열함과 탐욕이 몸서리치도록 지긋지긋해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라 뿜어져 나온 불의 코로나로 덮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일순간에 로마 최대의 휴양도시 폼페이를 어둠으로 덮어버렸다.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엄청난 양의 흙과 돌, 고온 가스와 열 구름에 동물과 사람은 물론 로마 상류계급의 화려한 건물들이 고스란히 사라져버렸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눈앞에 보이는 당장 쾌락에 무너져 내린 사람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있을 것이다. 철저한 직업윤리를 지닌 아틸리우스가, 사랑 앞에 모든 것을 던진 코렐리아가, 자신의 배움과 발견을 후대에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플리니우스가 말이다. 이에 반해 돈과 명예, 탐욕에 휩싸인 잔인한 졸부 암플리아투스와 권력 앞에 무릎 꿇은 비굴한 포피디우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아마 베수비오 화산이 그 결과를 대신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보았던 화산 재난 영화 ‘단테스피크’와 ‘볼케이노’에서 무섭게 타오르던 자연의 붉은 눈물을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무서운 힘 앞에 한없이 작아진 인간. 제아무리 뛰어난 문명을 지녔다 할지라도 자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지금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도 마찬가지 않을까? 봄철 저온 현상, 집중호우로 변해 버린 장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싱크홀 등 이미 수많은 현상으로 자연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엑솜니우스가 느꼈던 것처럼 대재앙의 전주로 자연이 들려주는 경고를 말이다.

로마 전성기 최대의 휴양지 폼페이를 뒤덮은 자연의 눈물, 베수비오 화산 폭발 4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로버트 해리스의 또 하나의 대작. 장마가 지나가고 폭염이 다가오는 8월에 이보다 더 뜨거운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자연이 내뿜어내는 뜨거운 눈물 속에 인간의 부끄러운 탐욕과 비열함을 던져버리고 본연의 순수함으로 다시 태어나자. 폼페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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