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쉬땅나무
개쉬땅나무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7.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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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아침에 나설 때는 비가 안 올 것 같았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부터 온다더니 일찍부터도 온다. 이럴 때는 나무사이로 가면 젖는 것을 면할 수 있다. 그러다 친절하게도 나무에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개쉬땅나무였다. 이름이 특이하다.

사전적으로는 높이 2미터정도의 작은 낙엽활엽관목인데, 흰 꽃이 잘게 핀다고 소개되어있다. 식물백과사전을 뒤지니, 점이 있는 것은 점쉬땅나무라 하고, 꽃이 필 때 뒤에 털이 없는 것을 청쉬땅나무라고 한단다. 밥쉬나무라고도 부른단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이다. 하필 ‘개’가 뭔가.

나무와 풀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생김새로부터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일 것이다. 개쉬땅나무 옆에는 매발톱꽃이 있었는데, 위로 뻗는 긴 꽃뿔이 매의 발톱처럼 안으로 굽어서 그렇단다. 비록 남의 형상을 빌려 이름이 붙여지긴 했지만,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는 이름이다.

개쉬땅나무는 매발톱꽃과 비교하면 너무 억울하다. 쉬땅나무도 어떤 어원을 갖는지는 모르지만, 개쉬땅나무는 쉬땅나무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못한 것이라는 인간적인 판단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개나리라고 하면 그저 객관적인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리는 나리인데 시원찮은 나리가 곧 개나리였다. ‘개’는 닮았으나 별로인 놈을 일컫는 말이었던 것이다. 한자로는 ‘사이비’(似而非)요, 요즘말로는 ‘짝퉁’이다. 빛 좋은 ‘개’살구다.

얼마 전 친절하게 대해준 속리산의 여관주인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개똥쑥차라면서 대접하길래 고마워서 아무 생각 없이 말려놓은 것을 만원에 샀다. 어디선가 들었다했는데 찾아보니 항암효과가 일반항암제에 비해 1200배나 높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개똥쑥인 것은 ‘똥쑥’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다. 냄새가 특별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비록 개라는 이름이 붙었어도 그리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개똥쑥은 ‘개땅쑥’이라고도 한다지만 ‘땅쑥’이 또한 따로 있지 않으니, 여전히 비교되지 않는 자기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개’와 반대되는 것은 ‘참’이다. 오이 가운데에서도 맛난 것이 ‘참오이’ 곧 참외다. 그러니까 사람도 ‘참사람’이 있으면 ‘개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조상님께는 송구스럽지만, 가끔이 내 이름에 개 자를 붙여본다. 하는 짓이 꼭 개 같기 때문이다. 참사람이 되긴 멀고도 멀었다. 참네, 참되기 참 멀다.

이렇게 참과 개를 생각하다보면 우리의 교육이 참교육이 아니라 개교육인 것만 같아 마음이 쓰리다. 나무와 풀에만 개를 붙일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에 개를 붙여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참새’만도 못하다.-유행가에 나오는 ‘새됐다’는 ‘개됐다’의 돌린 표현이다! 영어로도 ‘개나무’(dogwood)라고 불리는 산딸나무가 있다. 하얀 꽃이 꼭 열십자형으로 펴 미국인들은 교회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은 어찌된 일인지 ‘참나무’가 아니라 개나무다.

어학의 황금어장은 아무래도 식물 이름 아닐까 한다. 조팝나무, 으아리, 때죽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서어나무(이것도 개서어나무가 있다) 등등, 어원이 궁금하다. 말만 알아서 되지 않고 식물을 알아야 하는 언어의 푸른 바다-블루오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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