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사회
피로 사회
  • 주철희 <청주 제자교회 목사>
  • 승인 2013.07.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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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주철희 <청주 제자교회 목사>

‘피로 사회’는 재독 한국 철학자인 한병철 씨가 2010년 가을 독일에서 출간한 책으로 독일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후 지난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1세기에 들어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소진 증후군,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장애 등과 같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능률과 성과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성과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성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긍정성 과잉을 낳았고, 과거에는 타인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대였다면 현대는 스스로가 자신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다 보니 결국 모든 사람들이 탈진하게 되고 피로에 지친 그런 사회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병폐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진단한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 서문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우려의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성과 사회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폐해와 정신 질환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적어도 그 점에서는 서구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과 탁월한 안목에 감탄하면서 내심 속으로 이런 기대를 했습니다. 뛰어난 철학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한 저자의 책이 그의 고국 대한민국에서는 독일 이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 이것이 독일이라는 나라와 우리나라의 수준 차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진원지인 독일이라는 나라는 자신들의 현재의 삶에 대하여 무언가를 깊이 성찰하고 잘못된 현실을 돌아볼 줄 알고 고쳐나갈 줄 아는 나라인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성찰이나 진단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아닌가?

사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할지라도 안빈낙도를 즐길 줄 알았고, 가난한 선비로 살았지만 물질에 연연해 하지는 않았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 이이 선생의 인간 이해에 대한 학설은 서양의 뛰어난 학자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므로 낙후되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지다 보니 관심사가 경제에만 집중하게 되고 경제 개발과 경제 성장에 다 걸기 하다 보니 국민총생산량(GNP) 증대와 수출증대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되고 개인의 삶의 목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잘 살아보세, 잘살아보세’를 외치면서 잘 사는 것은 물질적인 가난과 빈곤에서만 벗어나면 된다는 단선적인 사고가 경제 제일주의적 사고를 불러왔고 그것이 피로 사회로 진입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예수그리스도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마태 4:4)

인간의 삶에 빵의 문제, 경제의 문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빵 문제만 해결되고 경제만 좋아지면, 그리고 성과만 높이고 생산성만 높이면 다 만족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빵도 있어야 하지만 빵만 추구하며 빵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여러 가지 피로 사회의 증상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빵만이 아닌 영혼과 정신의 근원적 욕구도 채울 줄 아는 국가가 되고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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