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매력
여름밤의 매력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7.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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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계절은 계절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봄 가을을 선호하지만, 그것은 온도나 풍광 같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 의한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마다 보편성보다는 유일한 개체로서의 개성이 작용하여 형성되는 매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계절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다. 도리어 밋밋하여 무난한 것 보다, 심하지만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계절이 매력에는 더욱 어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여름은 매력적이다. 무덥고 축축하여 생활에는 많은 불편을 주지만, 여름 특유의 매력은 그래서 도리어 빛을 발한다. 당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시를 통해 여름의 매력을 살피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 어느 여름 남정에서 신재를 생각하며 (夏日南亭懷辛大)

山光忽西落(산광홀서낙) 산의 해 홀연히 지고

池月漸東上(지월점동상) 못의 달 점차 동으로 오른다

散髮乘夜涼(산발승야량) 머리 풀어헤치니 밤기운 서늘하고

開軒臥閑敞(개헌와한창) 문 여니 한가하고 시원한 기운 방에 드네

荷風送香氣(하풍송향기) 연꽃에 이는 바람, 불어오는 꽃향기

竹露滴淸響(죽노적청향) 대나무에 듣는 이슬, 들려오는 맑은소리

欲取鳴琴彈(욕취명금탄) 금을 타고 싶으나

恨無知音賞(한무지음상) 알아줄 친구가 없음을 한하네

感此懷故人(감차회고인) 이런저런 생각에 친구가 그리워

中宵勞夢想(중소노몽상) 한밤 꿈길도 괴로워라

※ 빨간 덩어리가 뭉개지는가 싶더니 여름 해가 이내 산 밑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시인은 홀연하다(忽)라고 한 것이다. 이에 비해, 달이 뜨는 것은 느릿느릿하다. 연못 속에 빠져 있다가 차츰차츰 동쪽 위로 솟아오른다. 지는 것은 빠르고 뜨는 것은 더딘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느낌이다. 여름의 한낮을 뜨겁게 달구었던 해가 한순간에 서쪽으로 넘어가고, 낮보다는 한결 시원하여 살만한 밤을, 은은히 밝힐 달이 동쪽으로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시인은 여름밤의 청량함을 만끽하기 위해 묶인 머리카락을 풀어헤친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연다. 이것으로 일단 준비는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 매력을 즐길 차례이다. 먼저 연꽃과 바람의 절묘한 조합을 음미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이 눈을 통한 여름 즐기기라면, 바람을 타고 날아온 연꽃 향기는 코를 배려한 상차림이다. 여름 밤 축제의 다음 주인공은 대나무와 이슬이다. 시인은 대나무에 이슬이 내린 것을 눈으로 보고 안 것이 아니다. 여름밤의 고요한 매력을 대나무 이파리에 이슬 떨어지는 소리를 통해 나타낸 시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여름밤에 취해 흥이 도도해지자 시인은 금이 타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내 곧 금을 타도 그것을 들어줄 친구가 없음을 깨닫는다.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시인에게는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었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시원한 바람에 달이 뜨고 연꽃이 향기롭고, 대나무에 이슬 내린, 이 매혹의 여름밤이기에 이것을 함께 할 친구가 절실히 그리웠던 것이다.

고난과 역경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잘 견뎌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매력의 요체이다. 평탄한 길보다는 울퉁불퉁한 험지를 더 찾는 인간들의 행위를 매력 외에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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