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지혜다
게으름이 지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3.07.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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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여름은 무더워야 여름이다. 자연 생태의 순환과 유지는 철마다 그 철에 맞는 날씨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이런 때는 사람이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신의 체력이나 체질에 맞추어 적당히 게으른 것이 무더위를 탈 없이 지나가는 데는 도리어 약이 될 수 있고, 이처럼 융통성 있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이다. 당(唐)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은 무더운 여름 대낮에 자다 깨다 하며 빈둥대는 일상을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



◈ 여름 대낮에 우연히 짓다(夏晝偶作)

南州溽暑醉如酒(남주욕서취여주) : 남쪽 고을이라 무더위에 지쳐 마치 술에 취한 듯하고

隱几熟眠開北牖(은궤숙면개배유) : 안석에 기댄 채 깊은 잠들었는데, 북쪽 창 열어둔 채네

日午獨覺無余聲(일오독각무여성) : 정오에 잠 깨는 소리 뿐, 다른 소린 없는데

山童隔竹敲茶臼(산동격죽고다구) : 산의 시동은 대숲 너머에서 차 절구를 찧는다



※ 중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지구의 북반구는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날씨가 더워진다. 이 시에서 남쪽 고을은 시인이 유배생활을 했던 영주(永州)와 유주(柳州)를 말하는데, 지금의 호남(湖南)성과 광서(廣西)성으로 중국의 남부지역에 해당하고, 여름에 무덥기로 유명하다. 무더위에 지쳐 몸이 흐느적거리는 것이 영락없이 술에 취한 모습이다. 시인은 자신이 겪은 무더위의 심한 정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 끝에 술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더위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실감나면서도 유머러스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 무더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방의 북쪽 창문을 열어놓고 안석에 기대어 잠자는 것이 그것이다. 방바닥에 눕지 않고 안석(案席)에 기대서 자는 것은 밤이 아니고 낮임을 의식해서이다. 밤처럼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지만 숙면(熟眠)을 취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고, 남 보기에 게을러 보이지도 않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방법이 아닌가 북쪽 창문을 연 것은 그 쪽이 그늘져서 시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잠들었다가 정오가 돼서야 잠이 깨는데, 잠 깨느라 나는 소리 말고는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방이 고요하다. 시인 말고는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까닭이다. 애당초 시인 혼자 유배 살이 하던 집이 아니었던가 시인이 가장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린 시동(侍童) 하나인데, 그 마저도 대 숲 너머에서 일을 하고 있다. 차 절구를 찧고 있었던 것이다. 시동(侍童)의 절구 찧는 소리가 무더운 한낮의 정적을 깨는 유일한 소리인 것이다.

사람이 늘 성실하고 부지런할 수는 없다. 때로는 게으름이 지혜가 될 때도 있다. 무더위에 심신이 지쳐가는 한여름에 부지런을 떨며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대신 창문 활딱 젖히고 대청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운 채, 낮잠을 자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무더위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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