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鬼胎)라니
귀태(鬼胎)라니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3.07.14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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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청와대가 ‘귀태(鬼胎)’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했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 대변인이 지난 1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뜻의 ‘귀태’(鬼胎)에,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에 비유해 파문이 컸다. 제1 야당의 원내 대변인이 공개 석상에서 한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절치 않았다는 비난이 거센 가운데 청와대측도 이례적으로 초강경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막상 홍 의원이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했는데도 청와대는 14일까지도 침묵하고 있다. 이는 청와대가 여전히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청와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막말’보다는 민주당의 ‘대선에 불복하는 듯한 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민주당이 박 대통령을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이번 막말 파문을 역대 정권에서 처럼 정치권 흐름을 바꾸는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인듯 싶다. 이것이 청와대 속내라면 역대 정권의 막말을 활용한 정치권의 흐름 바꾸기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인데 대부분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의 ‘공업용 미싱’발언이다. 김 전 의원은 1998년 6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 막말 파장은 일파만파 번졌고 당시 여당인 국민회의는 이를 대야 공세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수세를 면치 못했고 결국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을 내주며 패했다.

또 있다. 지난 2010년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한 발언도 정치권의 판세를 바꾼 대표적 사례다.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룸살롱 자연산 발언’ 등으로 수세에 몰리던 한나라당은 천 전 의원의 발언을 기화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등신외교’ 발언도 정치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 의장은 일본을 다녀온 노 대통령을 향해 “방일외교는 한국 외교사에 치욕 중 하나”라며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런가하면 노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이던 2003년 한나라당 공개 회의에서 당시 김병호 홍보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개구리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환생경제’라는 연극에서 노 전 대통령을 ‘노가리’로 등장시키고 “이런 개XX” “육실헐 놈” 같은 표현도 썼다.

이렇듯 정치권에서 막말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막말이 횡행해도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대상으로한 막말은 삼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할수 있는 막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막말이 있다. 어쨌든 국민의 절반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닌가.

이번 막말사태는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대선 불복 심리도 담겼다는 게 정설이다. 실질적인 양당체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이념적 중간층이 실종된 정치적 양극화를 반영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하는 한국 정치가 제도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권리와 배려, 존중이나 예의와 같은 정치적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여론도 팽배하다. 막말도 개의치 않는 여야 정치권이 뼈속 깊이 각성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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