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인생
날씨와 인생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7.08 1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인류 생활에 있어서 과학의 발달과 함께 제일 변한 것 중의 하나가 날씨에 대한 예측 능력일 것이다. 기상 관측용 슈퍼컴퓨터는 기압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날씨의 변화를 추측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날씨는 과학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러한 날씨의 예측불가의 속성은 인생의 모습과 퍽이나 닮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인생을 날씨에 비유하곤 하는 것이다. 조선의 시인 김시습(金時習)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 개었다가 비 내리다가(乍晴乍雨)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불쟁)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 두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취하여야 하니 평생의 뜻을 얻을 곳 없도다

 

※ 조변석개(朝變夕改)로는 모자라다. 그야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실감케 하는 여름철 날씨이다. 날씨가 개다는 뜻의 청(晴)은 이미 한 번의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날씨가 그냥 죽 맑은 게 아니라 비 오거나 흐리다가 맑게 바뀐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맑아진 것도 잠깐이다(乍). 곧 바로 또 비가 내린다. 이것도 잠깐이다(乍). 또 다시 맑아졌다晴).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것이 날씨인데,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세상인심(世情)이라고 시인은 한탄한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사람이 갑자기 같은 입으로 나를 헐뜯는 일이나, 명리(名利)를 버리고 간다던 사람이 도리어 스스로 명리(名利)를 찾아나서는 일 같은 것은 세상 살다보면 흔히 만나는 장면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 것일까? 이유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시인은 그러려니 하며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자연을 보고 깨우친다. 피었던 꽃이 어느 날 문득 지더라도 봄이 개의하는(管) 일은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산 위의 구름이 갔다가 오더라도 산은 그것을 가지고 다투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구름이 오고 가는 것 같은 변덕을 자연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인정(人情)은 변덕이 죽 끓듯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다투기까지 한다. 시인은 바로 이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짐짓 타이른다. 평생 변치 않고 사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그저 매사에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여름철 날씨는 무척 변덕스럽지만. 이보다 더한 게 세상인심이다. 날씨가 어떻게 바뀌어도 그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자연처럼 사람도 수시로 변하는 세상인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아야 한다. 매순간 기쁘게 사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라는 것을 자연은 말해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