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의 밀어
여름 산의 밀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7.0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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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여름은 푸름의 계절이다. 산 빛은 푸르다 못해 검게 느껴지기도 한다. 들판을 지나는 강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산 속을 흐르는 계곡의 물은 푸른 숲이 비쳐서 그런지 몰라도, 그 빛이 더욱 푸르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산 속의 나무와 풀, 바위와 물이 한데 어우러진 계곡은 한 폭의 수채화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풍류(風流)와 힐링(healing)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이러한 산 속 계곡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 청계(靑谿)

言入黃花川 황화천에 들어가려면

每逐靑谿水 늘 청계의 물을 따라가야 하네

隨山將萬轉 산 따라 물길은 만 번을 돌지만

趣途無百里 가는 길 백리도 못되는 곳

聲喧亂石中 어지러운 돌 사이에 물소리 시끄럽고

色靜深松裏 깊은 소나무 숲에 景色은 고요하다

漾漾泛菱荇 넘실대는 물결에 水草가 떠다니고

澄澄映葭葦 맑디 맑은 水面에 갈대 그림자 비친다

我心素已閒 내 마음 본래 한가로우니

淸川澹如此 맑은 냇물 이렇게 깨끗하구나

請留盤石上 원하노니, 커다란 바위에 머물러

垂釣將已矣 낚싯대 드리우고 일생을 마쳤으면

 

※ 첫 구의 언(言)은 발어사(發語詞)이다. 시인은 황화천(黃花川)이라는 강물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시인은 도중에 청계(靑溪)라는 내를 지나야하는데 그 내는 산속을 뚫고 흐른다. 냇물은 그저 흐르는 것만은 아니다. 산이 허락한 길을 따라 흐를 뿐이다. 겸손한 물의 속성은 이런 것이다. 채 백리도 안 되는 길이지만, 물은 만 번을 돌아 흐른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물은 산이 허락한 길을 가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곡절을 겪어야 한다. 이 장면에서 누구나 계곡의 흐름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지 쉽지만, 시인은 산 속에서 청정(淸淨)과 무욕(無慾)을 읽는다.

산 속의 돌 쌓임은 인위(人爲)가 아니다.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은 자연(自然)이고, 그 물 소리는 제멋대로 시끄럽다. 보이는 것은 모두 고요하다. 깊은 산 속이라는 것은 소나무가 말해 준다. 산 속의 질서란 이런 것이다. 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이다. 물의 매력은 무한정한 흐름이다. 억지를 부리지 않는 순응의 흐름이다. 산이 허용한 길을 탓하지 않고, 만 번이라도 돌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 위에 떠 있는 물풀은 또 다른 물의 아량이다. 갈대가 거울 삼아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볼 때도 물은 묵묵하다. 이유는 따로 없다. 모두가 자연(自然)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속의 모습에서 시인은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의 마음이 세속(世俗)의 잡사(雜事)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물이 맑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아가 시인은 평생을 자연과 함께 무욕(無慾)으로 살고자 다짐한다. 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대변한다.

여름 산은 치유(治癒)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세계이다. 청정(淸淨)과 무욕(無慾)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을 여름 산은 조용히 웅변(雄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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