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碑木)-Ⅱ
비목(碑木)-Ⅱ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3.06.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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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지난해 제62주년 6·25전쟁 기념일에 ‘비목(碑木)’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본란에 게재한바 있다. 전쟁이 끝난 후 10여년 뒤에 초급장교로 최전방에서 복무한 충주출신 한명희씨가 비목의 노랫말을 쓰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었다.

족히 몇개 사단 젊은이들이 죽어갔음을 짐작할 수 있는 기막힌 전쟁터를 목도한 한 소위는 어느날 그 격전의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썩고 총열만 남은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웠다. 깨끗이 손질해 옆에 두곤 곧잘 그 주인공에 대한 끝없는 공상을 이어갔다. 전쟁 당시 카빈의 주인공이면 물론 소대장이고 계급은 소위였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락없이 지금의 자신과 같은 20대 한창 나이의 초급장교로 산화한 것이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옛 격전지에서 그가 이런 젊은 비애를 앓던 어느날, 잡초 우거진 산모퉁이의 양지바른 곳을 지나다가 문득 흙에 깔린 돌무더기 하나를 본다. 사람의 손길이 간 듯한 흔적은 보이나 이끼가 덮혀 세월의 녹이 쌓였고 푯말인 듯 나뒹구는 썩은 나무등걸 등으로 보아 그것은 결코 예사로운 돌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의 무덤임에 틀림없고 어쩌면 그 카빈총의 주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후 2년 뒤 그 능선을 떠나 전역을 한 그는 공중파 방송 음악PD로 입사해 작곡가 장일남을 만났고 그로부터 신작 가곡을 위한 가사 몇편을 의뢰받자 군 복무시절 목도했던 ‘첩첩산골의 이끼덮인 돌무덤과 새하얀 산목련'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불멸의 가곡 ‘비목’을 만들어낸 배경이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닯어/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한국전쟁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한이 그대로 녹아든 노랫말이다. 이 짧은 노랫말이 6·25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서울시립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한명희 선생은 지금도 74세의 고령임에도 남양주시에 6·25를 상기하고 희생자를 추념하는 통일·평화운동의 공간인 ‘(사)이미시 문화서원’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고 한다. 서울신문 기자 출신으로 굿데이 편집국장을 거쳐 ‘인터뷰365’를 창간해 발행인으로 있는 김두호씨의 인터뷰 글을 보면 그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비목’의 노래를 들어도 눈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많지 않다”면서 “비목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며 서울 하늘을 바라보면 착잡하다. 그들이 지켜준 산하에서 온갖 욕망과 쾌락을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부끄럽다”고 했단다.

한 조사결과가 이런 한명희 선생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절반이 6·25전쟁 발발 연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안전행정부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6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과 청소년(중·고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 결과인데 이 조사에서 대상 청소년 중 47.3%만 전쟁 발발 연도를 알고 있을뿐 절반 이상이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청소년들이 어찌 지금의 산하를 지켜준 ‘비목’의 주인공에 대한 고마움을 알겠는가. 더욱이 ‘궁노루 울음소리가 이름없는 용사들의 넋이 외치는 절규 같다’는 한명희 선생의 생각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런 청소년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가곡 ‘비목’을 부를까. 참으로 궁금하다.

올해는 6·25전쟁 63주년이다. 내일이 그날이다. ‘비목’이 왜 ‘불멸의 가곡’으로 불려지는지 청소년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두번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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