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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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6.19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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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류근

보리밭 끝에 자전거를 멈추고
아들과 함께 나는 하늘을 보네
구름은 가볍게 은비늘을 펼치며 흘러가고
찔레꽃은 이미 청춘을 지나
돌이킬 수 없는 시절 쪽으로 깊어져 있네
얼마나 먼 길을 떠돌아서
나는 비로소 이 길에 자전거를 멈추었나
세상의 언어를 모르는 아들 입술에
종달새 같은 지저귐이 반짝 빛나고
세상을 향해 굳어진 내 어깨 위로
보리밭은 황금의 물결을 내려놓네
너무 늦게서야 나는 나의 괴로운
자전거 바퀴를 멈춘 게 아닌가
보리밭 두던에 가만히 자전거를 기대어 두고
어린 아들의 손바닥 위에 나는
말없이 보리 이삭 한 개를 쥐여주네

※ 보리밭이 주는 푸근함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고요한 화폭 속에서는 부지런히 세상의 바퀴를 굴려온 아비와 세상의 바퀴를 굴릴 아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걸어가야 할 길은 다릅니다. 초록이 황금으로 물들기까지 시간이란 마법이 필요하듯, 아비는 평화로운 하늘과 구름을 가슴에 들이기 위해 숱한 나를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쉬어감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먼 길을 걸어가야 할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말이 몇개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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