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금메달
엄마와 금메달
  • 조인영 <수필가>
  • 승인 2013.06.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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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조인영 <수필가>

스물여덟에 충청도의 시골처녀가 서울로 시집오면서부터 고되고 억척스러운 엄마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억척스러운 모습은 많은 엄마의 모습들 중 가장 깊이 새겨져 있다.

남의 집 지하 창고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을 때이다. 나는 그때 초등학교 4학년 열한살이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엄마는 비린내를 몸에 달고 손톱은 야채를 다듬어 녹색,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옷차림은 몸뻬 바지에 아버지가 입던 와이셔츠를 소매를 잘라내어 일하기 쉽게 만들어 입으시고, 전대를 허리에 매어 묶어 돈을 받아 넣고, 거스름돈을 내어 거슬러주던 모습이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명절 때가 되면 꽁꽁 얼어붙은 동태를 하루에 열 짝도 넘게 포를 뜨시던 손놀림이 빨랐던 엄마. 한 끼니를 제대로 앉아서 드시지 못하고 밥그릇은 손에 들고 다니시면서 한 술씩 떠 넣으셨던 엄마. 지친 몸을 가게 한구석 박스에 기대어 잠깐씩 눈을 부치시던 울 엄마. 미용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하시고 늘 돌돌 말아 올려 핀 하나로 고정한 채 육년을 사시던 엄마. 술 드시면 밤새 주정하는 아버지를 달래고 달래서 주무시게 하시고 새벽시장을 나서던 엄마. 새벽에 물건을 하러 가시는 날엔 큰 딸인 나를 미안해하시면서 데려 가셨던 엄마. 물건을 하나, 둘 사서 나르시면 그 물건을 지키고 있는 내게 눈으로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던 엄마. 새벽에 도매시장서 물건을 흥정하고, 용달을 물러 무거운 짐을 남자처럼 얹어 싣던 엄마. 노상에서 기다린 딸을 위해 즉석에서 양념장 넣은 순두부 한 그릇 사주시던 엄마. 메뚜기도 한철인데 김장철에 벌어야 한다며 무거운 리어커도 마다 않고 배달까지 나서던 엄마. 고생고생 몇 년 만에 청계천에 한옥집 하나 사시고 집 구경 시켜 주시며 눈물 흘리던 엄마. 그렇게 고생 끝에 산 집을 들어가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치료비, 합의금, 벌금으로 팔아버리며 눈물을 한없이 쏟으시던 엄마. 내가 결혼한다고 애들 아빠 인사 시켰을 때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안 된다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리셨던 엄마.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었을 때 단호하게 엄마처럼 참으며 살지 말고 헤어지라고, 엄마가 힘이 되어 주겠노라 말해준 든든한 엄마. 여섯 살 다섯 살 두 아들을 데리고 이혼한 날 순대국 한 그릇 사주시면서 숟가가락을 손에 쥐어준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그렇게 속 썩이고 고생만 시키더니 잘 갔다고 입으로는 말씀하시면서 눈에선 한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엄마. 제삿날이면 웬수! 웬수! 하시면서도 정성껏 제사음식을 한상가득 준비하시는 엄마. 늙은이 니들 고생 안 시키고, 빨리 조용히 잠자다 죽어야 할 텐데 하시면서도 매주 등산은 빠지지 않고 다니시고, 건강보조식품 꼭 꼭 챙겨 드시는 엄마. 용돈이 입금이 안되면 내 건강, 손자 걱정하시면서 용돈은 보내라고 재촉하시는 엄마. 더 늙기 전에 멋있는 신사 할아버지 한 분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울 엄마.

엄마의 옛 모습, 현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큰 딸이 엄마한데 주고 싶은 게 있어. 금, 은, 동 중 어느 것이 제일 좋으셔?”

“당연히 금이지”

“오늘 내가 엄마한테 금메달 걸어준다. 잘 받으셔.”

“날 더우니까 실성했냐? 금 사다주면 받긴 받지.”

내 옆에 금메달을 받을 사람이 엄마만 있겠는가! 지금 날 행복하게 하고 삶의 의미가 되어주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금메달을 달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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