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의 아침
휴양림의 아침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3.06.17 2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5월의 끝 무렵은 은근히 화려하다.

창조주는 5월의 산야에 부드러운 연록색 천에 붉은 장미를 수놓고 숲 사이로 연분홍 철쭉과 주황 산나리, 눈이 부신 산딸나무의 하얀 꽃들을 곁들여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수채화를 완성시켜 모든 이에게 선물로 보내주셨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5월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매년 정성껏 내 생일상을 차려 주시며 “네가 소띠이고 농사일이 많은 5월에 태어났으니 소처럼 일이 많고 힘이 드는가 보다” 라는 말씀을 하셨기에 정말 일에 묻혀 바쁘고 힘들 때면 ‘ 5월에 태어나서 바쁘고 힘들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큰 며느리는 결혼 후 맞는 내 첫 생일상을 자기 집에서 차려주겠다고 했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힘들게 하지 말고 식사 한 끼 사달라고 하였지만 며느리는 밤새 음식을 준비하여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중국음식, 양식, 한식을 모양과 색을 갖추어 근사하게 차린 생일상을 받고 흐뭇했는데 둘째 며느리를 맞고 처음 받는 생일상은 아주 특별했다.

생일 며칠 전 휴대폰으로 어머니의 생신계획서를 보내왔다. 모임 장소는 강원도 횡성의 휴양림, 식사메뉴, 담당부서(아버님, 아주버님, 도련님, 큰 동서와 자신 )를 자세히 보내왔다.

놀랍기도 했지만 재미있어서 곧 바로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보냈다. 의외로 남편과 아들들도 껄껄 웃으며 기꺼이 따르겠다고 하여 생일 전 날 기대 속에 휴양림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속에서 나는 5월이 다 내 세상인 것처럼 즐기며 행복했다. 그리고 휴양림에 도착하여 미리 와서 말끔하게 방청소를 하고 기다리던 둘째 아들 며느리와 가족이 합류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 떠 있었다.

펜션을 둘러싼 맑은 공기와 새소리 물소리, 보랏빛 붓꽃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5월은 한층 싱그러웠다.

남편은 저녁 당번으로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며느리들은 반찬준비를 했으며, 아들들은 고기를 굽느라 바쁜 시간 나는 손자 손녀를 데리고 숲을 걸었다.

숲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다람쥐 한 마리가 행복한 우리와 눈을 맞추고, 등이 푸른 개구리들이 계곡에서 신이 나는 모습에 우리 아가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생일 새벽 5시,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곤히 잠든 식구들 몰래 숲속을 거닐었다.

하얀 찔레꽃의 소박한 미소와 은은한 향내, 숲 사이를 뚫고 얼굴을 내민 코발트빛 투명한 하늘,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베푸는 최대의 생일 선물 ‘사랑’을 가슴 하나 가득 끓어 안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했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5월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어머니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힘들게 나를 낳으시고 보릿고개에 쌀밥은커녕 미역국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셨을 텐데 어머니 살아계실 때 이런 행복을 함께 하고 감사함을 전했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자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지 않아도 사랑한다는 마음과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데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이 행복한 귀퉁이에서 가슴을 짓눌렀다.

비록 둘째 아들이 식사 당번으로 미리 불려온 곤죽이 된 미역국과 카레밥으로 생일상을 받았지만 내게 온전한 하루의 휴식을 선물한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낳아주신 하늘에 계신 그리운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는 예순다섯 번째의 생일을 기념하는 휴양림의 행복한 아침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