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사람의 향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6.1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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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사람이 어려서 부모나 스승 같은 어른들께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어린 사람들은 대부분 “예” 라고 대답하며, 실제로 마음속으로도 그러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일까? 이 물음에 닥치면 속 시원한 대답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 과거(科擧) 같은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반대로 명리(名利)를 초월해 자유롭게 사는 것을 훌륭하다고 생각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벼슬길에 나서느냐 나서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인간으로서의 향기를 지니며 산다면, 그것이 훌륭한 삶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이 생각한 훌륭한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맹호연에게 드림(贈孟浩然)

吾愛孟夫子(오애맹부자) 나는 맹 선생님을 사랑하는데

風流天下聞(풍류천하문) 풍류가 온 세상에 알려졌네

紅顔棄軒冕(홍안기헌면) 젊어서 벼슬 버리고

白首臥松雲(백수와송운) 늙어서는 소나무와 구름에 누웠네

醉月頻中聖(취월빈중성) 달에 취하여 자주 술 취하고

迷花不事君(미화부사군) 꽃에 홀려서 임금 섬기기 하지 않았네

高山安可仰(고산안가앙) 높은 산을 어찌 올려 볼 수 있을까?

徒此淸芬(도차읍청분) 다만 여기서 맑은 향기를 떠 담을 뿐

※ 이백(李白)은 띠 동갑으로 열두 살 위의 선배 시인이었던 맹호연(孟浩然)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아니 존경하였다.

애(愛)는 사랑하다 내지는 좋아하다는 뜻으로 문아(文雅)한 표현을 중시하는 시에서 잘 쓰지 않는 글자이다. 시인은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과감히 이 글자를 쓰고 있다. 부자(夫子)는 중국에서 공자(孔子)에게만 붙이는 극존칭 호칭이다.

시인은 맹호연(孟浩然)을 공자(孔子)와 동급의 인물로 추켜세운 것이다. 그런데 맹호연(孟浩然)은 공자(孔子)와 달리 인의(仁義)가 아닌 풍류(風流)로 천하의 이름을 얻었다. 인의(仁義)와 풍류(風流)는 속박(束縛)이라는 관점에서 대립된다. 풍류(風流)는 술과 산수자연과 같은 속박(束縛)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채 핏기가 가시지 않은 홍안(紅顔)의 젊은 나이에 초헌(초軒)을 몰고 면류관(冕旒冠) 쓰는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되는 꿈을 버린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흰 머리 노인(老人)이 되도록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평생을 산 것은 더욱 대단하다. 남들이 과거(科擧) 준비에 독서(讀書)할 때, 이 사람은 달에 취하고 술에 취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서막(徐邈)이란 인물은 술을 좋아하여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불렀고, 탁주(濁酒)는 현인(賢人)이라 불렀으므로, 중성(中聖)은 청주(淸酒)에 취하는 것을 말한다. 달과 술뿐이 아니다. 이 사람은 꽃에 푹 빠져서 임금 섬기는 것은 남의 일일뿐이다. 인품이 어찌나 높은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다. 그래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 향기를 마치 물을 뜨듯 떠서 맡을 뿐이다.

사람의 훌륭함을 좌우하는 것은 명리(名利)가 아니라 향기이다. 향기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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